귀인을 만나다
귀인을 만나다
감귤 농장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후한 인심오늘은 신께서 펜이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일까? 길에서 귀인들을 만나 보다 값진 추억 여행이 됐다. 우연히 제주 감귤 농장을 방문해 제주 농가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제주 올레지기를 만나 맛있는 점심을 소개받은 행운을 안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호사
간밤에는 시골집을 리모델링한 비록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였지만 그 NOM에서 호사(?)를 누렸다. 따뜻한 장판 때문에 어제 너무 무리해서 노곤했던 삭신을 지졌다. 개운하다. 어제처럼 20km도 거뜬할 것 같다. 아침에 게하에서 제공하는 미역국을 먹고 나니 쥔장이 4,000원을 준다.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아침 식사를 했기 때문에 준단다. 어젯밤 계산할 때 조식비로 따로 1인당 2,000원씩 줬었다. 줜장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한 식사를 안 먹으면 쓰레기 처리해야 하니 벌금조로 받는다는 것이다. 우린 '굿아뎌~'라며 엄지척해줬다.
감귤 농장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후한 인심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옆도 보고 지나온 길도 되돌아보자고 둘은 무언의 약속을 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채우고 숙소를 나선 지 5분도 채 못 되었다. 갑자기 나이 지긋한 할아버님이 아주 좋은 것을 보여주신다며 우리를 이끈다. 머리 처박고 길거리 가다 신사임당 입신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바로 길 옆 당신의 감귤 과수원을 보여주셨다. 제주 감귤밭이 지천에 깔려서 그렇지 않아도 언제 갈 기회가 있을까 하고 자못 기다렸었다. 77세인 할아버님은 고인 된 장모 댁에 보름 전에 귀농하셨단다. 수년 전부터 집을 리모델링하고 과수원을 정비했는데 할머님이 반대해 홀로 귀농했다. 외롭게 혼자 계시니 말동무가 필요하셨나 보다. 배낭을 메고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봉에 매달아 어깨에 메고 가니 여행객으로 알고 우리를 초대하셨다.
밀감나무와 동백나무에 관한 것. 허물어져 가는 제주도의 재래식 화장실을 보여주며 화장실에서 돼지를 키우게 된 이유를 말씀하신다. 돼지고기보다는 퇴비를 얻기 위함이란다. 생전에 장모님이 남의 눈을 피해 샤워를 하던 지붕 없는 간이 샤워실도 보여주며 제주 여성의 삶을 유추해 볼 것을 은연중 드러내신다.
버스와 트레일러를 운전하며 살아온 파란만장한 당신의 인생 이야기와 제주도의 자연환경 등 위트를 섞어가며 얘기해주시는데 1시간이 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이렇게 현지인의 얘기를 듣거나 직접 삶을 체험하는 것이 여행객으로서 그 지역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데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안방에서 커피까지 주시니 길손이 너무나 많은 대접을 받았다. 마치 살아생전 아버님을 뵌 것 같다. 헤어지기가 서운하셨는지 큰길까지 나오셔서 배웅해주셨다. 꼭 부모 자식이 헤어지는 것 같아 우리는 '항상 건강하세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왼쪽으로 푸른 바다를 휘저으며 화산석을 밟기도 하고 지천으로 깔린 돈나무와 동백숲 길을 걸었다. 나무 터널이 타임머신에서 툭 튀어나오듯 나오면 다시 확 트인 바다에 심신이 릴랙스 된다. 한 직장에서 34년 동안 쌓였던 묵은 때 찌든 때 모든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버린다. 몸이 가벼워짐을 스스로 느낀다.
나 태어나 처음 듣는 해녀의 질긴 생명력 "숨비소리"
노랗고 파란 올레 리본의 인도를 받으며 갑자기 바닷길로 접어들었다. 바다를 보며 걷는데 아주 가까운 바닷가에 빨간 공이 보였다. 저게 뭐지? 하는 순간 '테왁'이 생각났다. 미리 읽은 몇 권의 올레 기행문 덕을 여러 번 본다. 제주 해녀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소라, 전복, 해삼 등을 줍는 곳을 표시한 것이다. 소위 물질한다고 표현한다. 수확물을 테왁 그물 망태에 담아 다시 올라오는데 숨이 벅찬지 연방 휘익~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바로 '숨비소리'다. 직접 해녀의 숨비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자 물안경과 잠수복을 입고 거친 숨을 내쉬던 해녀분이 손을 흔들어준다. 그때 바로 찰칵해야 하는데 펜이도 반가운 나머지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마치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듯이ㅎ
이 순간을 놓칠세라 셔터를 누르려는데 아뿔싸 해녀는 이미 한 마리 인어가 되어 잠수하고... 기다렸지만 그런 포즈는 또다시 용납되지 않았다. 언제 다시 뭍으로 나올지 몰라 다음 길을 재촉했다. 너무 아쉽다. 이제 코스 시작이니 해녀와 인터뷰할 때까지 올레 종주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해녀가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 시식 장면을 상상하니 침이 꼴까닥이다.
카페 와랑와랑의 추억
반복되는 올레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그림의 주제는 같을지라도 모두가 다르다. 구도가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그리고 조연도 다르다. 때문에 질리지 않다. 그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다. 제주올레만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이다. 이래서 제주올레가 좋다. 이제 두 번째 코스 돌고 있는데 제주올레 마니아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완주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제주와 우도를 오가면서 택시, 뱅기, 버스, 배를 타서 긴장했는지 변비에 걸렸다. 3일째다. 올레를 걸으니 몸이 반응한다. 측간이 마렵다. 그래서 걷다 발견한 곳이 카페 '와랑와랑'이다. 지붕에 와랑와랑 글자가 둥둥 떠 있다. 올레 기행문에서 꼭 한 번 가보라 했는데 체독 해결하러 이렇게 올 줄이야ㅎ 3일 묵은 독을 긴급 방출하니 가벼운 마음이 수소 가스 머금은 지붕 위의 글자처럼 두둥실이다. 카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데 아담하고 소박했다. 제주 구좌읍 특산품인 구좌 당근으로 쥔장이 직접 만든 당근즙으로 갈증도 해결했다. 가격은 6천 발. 비운만큼 또 채웠다.
올레에서 만나는 행운들
또 올레를 꼬닥꼬닥(느릿느릿의 제주어) 걷는다. 현병춘 할머니가 심어 100년이 넘는 동백 울타리(올레책에서는 '군락지'라고 표현했다)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동백 줄기의 순박함과 화려하지 않은 붉은 꽃에 매료되어 잠시 동백 그늘에 시선을 돌렸다.
조배머들코지를 돌아 쉼터에 잠시 쉴 찰나 중년의 아웃도어 여인이 인사를 건넨다. 제주 올레지기다. 제주올레사무국에서 교육 후 코스별로 배치해 올레객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읽었던 제주올레 기행문에서 배웠다. 이 만남도 행운이었다. 올레 코스와 주변 숙소 정보를 얻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식당 추천도 받았다. 메뉴는 돼지 불고기 배추쌈+옥돔구이 백반. 아주 깔끔하고 맛있다. 1인분 8,000원으로 가격도 착한 위미항의 '신팔도강산' 식당이다. 신발 벗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식당이다. 5코스 올레지기님께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바닷가에 사진과 글을 전시한 작품을 보는 호사도 누렸다. 민영주 사진작가의 '마음빛그리미' 전시관이다. 제주의 다양한 풍경과 영롱하게 또르르 굴러갈 것 같은 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진을 보며 안구를 정화하고, 시어를 보며 생각을 정화하니 참 좋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어제 무리한 피로가 누적되는지 피곤했다. 그래서 마을 정자에서 잠시 앉아 쉰다는 게 편하게 누워버렸다. 오랜만에 갖는 야외 오수다. 10~20분 잠깐 잤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제주어로 '쉬멍 놀멍'이다. 길을 걷다 도로변에서 발견한 제주어다. 우리 같은 여행객을 위한 제주어 사전이다.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 같다. 배워봄직도 하다. '고랑 몰랑 바사 알주' = 말로는 모르고 봐야 알지.
쇠소깍의 비경에 반하다
드디어 5코스 종점 '쇠소깍'에 도착했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인 쇠소깍은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빚은 황록빛 비경은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시신경에 담는 순간이었다. 쇠소깍의 양쪽 절벽은 병풍을 이루고 바위 위의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어업기지였다. 우돈(牛屯) 지명을 따서 우소(牛沼)라 했다고. '깍'은 바다와 만나는 부분을 제주어로 표현한 것이고 우소가 쇠소로, 쇠소+깍이 합쳐진 말이다. 용이 산다고 해서 용소라고도 한다. 이곳에 남녀 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주 슬픈 전설이 있다고 한다.
5코스(남원 포구~쇠소깍)는 총 14km다. 3시간 30분 소요되고 21,000보로 힘든 구간은 거의 없다. 오늘은 점심에 이어 저녁과 숙박지도 아주 탁월한 선택을 했다. 신께서 갈무리까지 해주셨다. 숙소는 '바람코지 게스트하우스'. 6코스 쇠소깍 휴게소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내려오면 된다. 시설도 깨끗하고 도미토리가 넓다. 가격도 착해 1인당 20,000원에 조식 제공. 저녁은 쥔장이 소개한 '복순이네' 식당. 1박 2일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식당으로 해녀가 운영한다고 한다. 메뉴는 우럭 매운탕 작은 것이 30,000원이다. 생각보다 우럭이 커서 둘이 푸짐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