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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Feb 27. 2019

내 그리운 아들이여!

아들과 처음 마주하던 날

붉고 가느다란 실핏줄이

배 위로 지나며

통 큰 울음을 터트렸던

내 그리운 아들이여!


비록 여리게 세상을 열었지만

백일이 되고 돌을 넘기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며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 늦둥이

내 그리운 아들이여!


삐뚤 삐뚤 글씨가 귀엽게 춤을 추고

야무지게 태권도장을 다니면서

네 가느다란 손이 아빠 손에 의지한 채

힘차게 무등산을 정복했던 유딩 시절

내 그리운 아들이여!


열 살 터울인 두 누나의 뭇 사랑을 받고

S보드와 자전거로 아빠와 경주도 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함께 응원도 하면서

아빠와 환상의 콤비를 이뤘던 초딩 시절

내 그리운 아들이여!


자전거 무대를 영산강으로 옮기면서

종주의 짜릿한 맛을 생고기가 보상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난치병 중2병을 거쳤지만

아빠에겐 항상 최고였던 중딩 시절

내 그리운 아들이여!


여느 집처럼 아빠와 티격태격도 했지만

여전히 심성이 고왔고

한 시간 넘는 통학에도 불평하지 않고

유독 친구가 많았던 고딩 시절

내 그리운 아들이여!


고2 겨울방학 직전 크리스마스날

거울 앞에 머리 빗으며 주고받던 말들

함께 놀아주라는 엄마 말에

'엄마는 아빠가 있잖아~'

그 모습과 대화가 마지막일 줄이야

내 그리운 아들이여!


날벼락 소식에 정신없이 달려간 응급실

살려만 달라고 두 손 닿도록 애원했건만

아들은 사경을 헤매는데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력

자괴감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가 보다

내 그리운 아들이여!


의사도 신이 아닌 인간이라

손을 쓸 수 없다는 황당함에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지

내 그리운 아들이여!


수술 한번 못해보고

기계 경고음만 들리는 암흑의 중환자실

죽음의 그림자가 혀를 날름거리며 바뀌는 침상들

의식 없는 아들을 지켜보며

눈물 콧물로 하나님께 애원했다

내 그리운 아들이여!


네 몸에 연결된 모든 호스와 전선들

한 가닥 희망처럼 보였는데

사고 엿새 만에 아들은 천국 여행을 떠나고

남은 건 아들의 추억밖에 없다

볼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고

네 이름 석 자 불러봐도 대답도 없다

내 그리운 아들이여!


고교를 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된 아들

부모자식 간 작별의 인사 한마디 없이

황망하게 떠난 사랑스러운

내 그리운 아들이여!


사백스무엿세 아들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눈을 감고 길을 걷는다고나 할까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엄마가 너무너무 힘들어했지

내 그리운 아들이여!


한밤중 나도 모르게

아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담았던

사고 장소에서 대성통곡하며 허공을 헤맸지

밤이면 아들이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올 것만 같은 현관문

뚫어지게 쳐다봐도 열리지 않는 문

내 그리운 아들이여!


아들이 못 찾아올까 봐 이사도 못 가고

체취라도 맡고파

아들 침대에 누워보지만 싸늘한 찬 기운뿐

꿈에서라도 만나보고파

아들 침대에 자보지만 악몽만 남는다

한없이 그리운 아들이 안 보여

내 그리운 아들이여!


세월은 쏜 화살처럼 간다지만

아들 없는 1년 2개월은 참척의 고통 시간

하루빨리 아들을 만나고파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들의 추억은 더 또렷해

내 그리운 아들이여!


울다 웃다 미친넘처럼 광대가 되기도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에 빠질 땐

정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빠의 모습인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습관이 됐지

내 그리운 아들이여!


낮과 밤을 약에 의지해 버티는 삶

하루에도 무시로 생각나는 아들

아들 볼 날만 손꼽아 기다려본다

아빠 가는 그날까지 평안하기를 소원한다

내 그리운 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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