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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Mar 07. 2019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

매일 밤 악몽을 꾼다.

그것도 하나의 꿈이 아니라 이것저것 뒤죽박죽이다.

약을 먹으면 오전까지 축 늘어져 맥없이 허공을 헤맨다.

안 먹으면 쉬이 잠들지 못하고 든다 해도 금세 깨어 몇 시간을 헤맨다.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 나서 나타난 현상이다.

병원 의사와 상담도 해보지만 쉽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만의 소일거리를 찾아보려 노력 중이다.

칸티 캠핑카로 가끔 돌아다니며 분위기도 바꿔본다.

잠시 낯선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진다.

하지만 여행도 날마다 할 수 없는 법!

그래서 10년 전에 잠깐 배운 드럼 학원에 등록도 했다.

벌써 2개월이 지났는데 가는 날보다 빠진 날이 더 많다.



스틱으로 잃어버린 감각을 찾는데 상당히 헤맸다.

60을 코앞에 두고 이게 뭐 하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느리긴 해도 손과 발로 스텝을 하나하나 익혀간다.

스트레스 해소와 무념이 너무 좋다.

드디어 봄이 왔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그래서 나대지 묵전에 손을 댔다.

집에서 가까운 세량리다.

그냥 욕심 없이 조그맣게 텃밭이나 일구려 했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동서가 포크레인까지 동원했다.



난데없는 공사판이 되었다.

30년 가까이 방치되고 폐가를 허문 건 5년 정도 되었다.

그러니 산비탈에 자라는 대나무와 칡넝쿨이 온 땅에 터를 잡았다.

포크레인으로 이 잡듯 땅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손으로 하려던 계획이 과대망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틀간의 기계 작업으로 대지 경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집을 지어도 참 좋겠다.



건설업을 하는 동서는 무너진 돌담을 아주 멋들어지게 복원했다.

어깨너머로 한 수 배우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제 소일거리가 생겼다.

첫째, 산비탈 경계와 무너진 수로의 돌담을 쌓는 것.

둘째, 불모지나 다름없는 자갈밭 돌을 고르고 텃밭을 일구는 것!

셋째, 화초와 꽃나무를 심어 예쁘게 조성하는 것!



단번에 조성은 안 되겠지만 이삼 년 하다 보면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욕심부리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마눌님과 함께 세량리를 찾고 있다.

마눌님은 돌로 밭 경계를 만들고 상추 씨앗도 뿌렸다.

펜이는 주로 힘든 일을 했다.



해묵은 잡풀과 잡목도 태웠다.

하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모습에 목가적인 그림이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돌을 한 단 한 단 쌓다 보니 잘 올라갈 때도 있다.



자신의 없던 소질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공든 탑과 무너진 탑의 반복으로 돌 쌓는 실력은 마눌님이 칭찬할 정도가 됐다.

전문가가 봤을 땐 비록 허접할지라도.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30년 넘게 사무실에서만 뒹굴던 펜이다.

난데없는 노동에 온몸에 비상등이 켜졌다.

펜이뿐만 아니라 마눌님도 함께다.

욕심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 내 일이라고 자연스레 욕심이 난 것이다.

기본 네댓 시간을 했으니 무리가 될 수밖에.

허리와 어깨, 손목, 손가락에 붙이는 파스가 훈장처럼 점령했다.

짬짬이 소일거리로 시작한 것이 이젠 중노동이 되었다.

좀 쉬었다 해야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할 때 아무런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하다 허리 한 번 펴고 파란 하늘도 보고 저 멀리 산도 마을도 보고 자연에 눈을 돌린다.

이 순간만큼은 무념의 상태가 되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정신건강에 아주 좋다는 것을 체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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