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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Dec 21. 2018

제주올레 완주 6일째 7코스 마무리

꿩 에스코트 받아는 봤나~(법환 포구~월평)

  오늘도 어떤 귀인을 만날까? 어떤 모습으로 올레가 펜이에게 다가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올레여행자센터를 나섰다. 하늘은 걷기에 딱 좋게 진한 구름으로 드리웠다. 4월 16일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자녀를 둔 부모로서 잊지 못할 4.16이다. 희생자를 비롯한 미수습자 가족의 안타까움을 온 국민의 가슴에 묻어둔 세월이 벌써 3년 됐다. 세월호 인양 이후 하루빨리 아홉 분의 시신이 수습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겁다.

  서귀포 중앙로터리에서 5번 버스를 타고 어제 중단한 7코스 법환 포구 방향으로 향했다. 새롭게 다가오는 수시로 변장하는 올레의 파노라마에 눈이 즐겁다. 제주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바당 올레는 바다 내음이 폐부 깊은 곳까지 적신다. 온몸이 반응한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어다.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보고 때론 하늘을 본다. 57년간 찌든 세상에 담긴 노폐물을 토하듯 날숨으로 제주의 바다에 토한다. 이게 힐링이다.




주상절리대와 강정천

  약근교를 건너 컨싱턴 리조트를 오른쪽으로 휘감고 돌아 강정천에 닿으면 리조트 방향에 주상절리대가 나타난다. 절도 있게 각진 육각형의 절리대가 신비롭다. '일강정'이란 말처럼 강정마을은 담수가 가능해서 예전에는 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논농사가 가능한 제주에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그리고 강정천은 1급수에서만 산다는 은어의 서식지이다. 여름철에는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강정마을에 다다르자 10여 년간 이어진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주민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북멘토에서 발간한 '그대 강정'을 보면 미국과 중국의 등쌀에 강정 주민이 피해를 본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펜이 블로그의 책 리뷰를 보면 이해가 더 쉽다.(https://m.blog.naver.com/ksgil39/220819322940)
지금은 없어진 '구럼비 바위'가 추억으로만 남아 지구상에서 사라진 게 너무나 안타깝다. 길을 지나며 올레객에게 비운으로 다가왔다.




해군기지와 사택

  2007년부터 시작된 용과 독수리의 싸움. 2013년 3월까지 6년 동안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은 5억 원이 넘는 벌금형에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연인원 670여 명이 연행되고 구속•수감된 사람이 20여 명에 이르며 지금도 수감 중인 사람이 있다. 그렇게 해군기지는 결국 2016. 2월에 완공되었다. 그래서 올레길도 구럼비가 있었던 바닷가로 가지 못하고 해군기지를 빙 돌아 우회해야 한다. 해군기지와 강정 포구 사이에는 기지 진입을 위한 도로 건설과 크루즈항 설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시끄러웠다.




  마을의 귤 하우스 문이 열려 있어 안에 들어가 보는 행운을 안았다. 귤꽃을 따는지 아니면 수정을 하는지 한창 일하고 계셔서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살피다 나왔다. 노지 귤은 이제 꽃망울이 생기는 중인데 하우스 귤은 벌써 하얗게 피고 있다. 수정을 위해 하우스 주변에는 벌통에 벌이 왱왱거리며 여행객을 위협했다. 여행자가 낯설었는지 하우스 안의 거위가 꽥꽥거리며 펜이 눈치를 본다. '괜찮아' 하며 우쭈쭈 시늉을 해주는 데도 슬슬 피한다. 귤 하우스를 뒤로하고 강정마을을 가는데 길에서 애견 미용이 한창이다. 주인의 애정이 묻어 나온다.




카나리아 야자수(좌), 워싱턴 야자수(중앙), 동고동락하는 배낭

  군락을 이루는 야자수다. 키가 작은 게 카나리아 야자수, 큰 게 워싱턴 야자수다. 네이버 지식in 덕분에 확실히 배우고 간다. 올레여행자쉼터에서 구입한 간세 2개를 배낭에 달았다. 이제야 올레꾼 같다. 처음엔 토끼풀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아니다. 제주도 토종 땅콩 꽃이 길가에 지천으로 폈다. 수확도 가능한지 모르겠다.




숭어떼와 낚시꾼

  올레를 걷다 월평마을 거의 다 와서 낚시꾼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곧바로 큰 돌들 사이사이로 다가갔다. 열심히 낚시 중이다. 갓 잡은 고기를 손질하는 사람. 이래라저래라 지휘하는 사람. 70대 세 분은 제주 현지인으로 친구 사이였다. 회를 손질하시는 분이 어디에서 왔냐?, 뭐 하러 다니느냐? 등등 시시콜콜에 자연스레 대화의 친구가 되었다. 그 덕에 싱싱한 벵에돔, 자리돔회와 탕까지 얻어먹는 호사를 누렸다. 거기다 반주까지ㅎㅎ 오늘 점심은 이걸로 대만족이다.




벵에돔과 자리돔회
제주 제사 음식까지 얻어먹는 행운이 뒤따랐다.

  제주인과의 대화에서 '육지것'과 미완의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의 비교 등등 대화를 나눴다. 그분들은 올레객을 배려해 최대한 표준말을 써줬다. '육지것'은 제주 사람이 육지 사람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당신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영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속의 또 다른 외국에 온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낚시꾼들은 술이 부족했던지 어디론가 전화했다. 배달 온 후배는 제주 제사 음식까지 함께 가져왔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만든 산적, 메밀묵으로 만든 산적, 아주 특별한 제주 제사 음식을 먹어봤다. 블로그 이름처럼 '나 태어나 첫 경험'이다. 제주인들이 외지인에게 갖는 친절함이 오늘의 관광 제주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기 많이 잡고 여행 잘하라는 서로의 당부를 남기며 올레길을 촌촌히(천천히의 제주어) 걸었다.




펜이를 에스코트하는 꿩

  배의 포만감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데 펜이보다 대여섯 걸음 앞서 걷는 게 보인다. 암꿩이다. 순간 카메라를 들이대며 천천히 뒤따랐다. 꿩은 펜이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좌우로 살피며 펜이를 바라보곤 했다. 올레 코스에서 상당한 시간을 뒤따라갔다. 원래 꿩은 성미가 급해 인기척만 나도 이내 사라지는데 상상 초월이다. 이렇게 꿩이 올레길에서 펜이를 에스코트를 해준 꼴이 되었다. '나 태어나 첫 경험'이다. 올레길에서 꿩이 에스코트해준 올레객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결국, 꿩이 펜이를 피하는 게 아니라 꿩이 펜이를 배웅해줬다. 책은 영상 전달이 안 된다는 게 흠이다. 전자책은 되는지 모르겠다.




  걷다 문이 열린 딸기 하우스를 보게 되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안 계셨다. 입구에서 딸기의 예쁜 모습을 렌즈로 잡았다. 먹음직스럽게 탐스럽게 잘 익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호밀은 올레객을 유혹했다. 출렁이는 녹색 물결이 아름답다.




오다 보니 7코스 종점인 월평마을 아왜낭목을 지나쳤다. 길에 전시된 하귤의 크기가 다양하다. 오른쪽 하귤은 어른 주먹 두 배 사이즈다. 엄청 크다.



샬레 게스트하우스와 게하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예약한 대포 포구의 '샬레 게스트하우스' 숙소만 생각하다 7코스 종점 스탬프를 놓쳤다. 내일 다시 찾아가 찍어야겠다. 샬레 게스트하우스 지붕이 둥글둥글 이쁘다. 건축이 꽤 되었는지 시설이 컨트리하다. 이런 게 오히려 정감 있고 좋다. 도미토리로 4인실 1인당 15,000발. 정말 착하다. 침대에 전기 패널까지 아주 따뜻하다.




  마침 게스트 한 분이 고사리 꺾으러 간다길래 따라나섰다. 그분의 차에 동승했다. 차로 10여 분 거리. 서귀포시 색달동 야구인의 마을 뽀짝 아래다. 오늘은 '나 태어나 첫 경험'을 3가지나 했다. 추억에 오래 남을 일이다. 지천에 깔린 고사리가 엄청 많다. 제주도 고사리가 유명한데 이렇게 직접 꺾어 보긴 또 '나 태어나 첫 경험'이다.

  저녁은 흑돼지 찾아서 다른 방 게스트의 소개로 간 집인데 먹으면서 메뉴판 보니 제주산이 아니라 미국산에 식겁했다. 대충 먹고 나와버렸다. 식당을 잘못 소개해줘 미안하다며 게스트가 사 온 제주 막걸리와 직접 끊은 고사리를 대처 안주 삼았다. 물론 그 게스트 작품이지만 싱싱하니 아주 맛나다. 이렇게 제주의 엿새째 밤이 막걸리에 홀릭 되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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