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그리고 산방산 유람선
대평 포구의 '돌담에꽃머무는집 게스트하우스'에서 4인실 도미토리를 나 홀로 전세 냈다. 다른 방(펜션)에는 손님이 있었는데 게하만 없었다고. 카페에서 아침 먹기 전 쥔장과 제주 이주의 삶과 올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사람마다 제주 정주 생각과 체질이 다르니 자기에게 맞는 이주 여건과 컨디션에 맞게 걸으란다.
간단하게 식빵과 삶은 달걀로 아침을 때우고 생수통을 채워 박수기정을 오른다. 아침 9시다. 대평 포구에서 화순 금모래 해변까지는 7.5km로 3~4시간 코스다. 제주 본섬에서 가장 짧은 코스다. 그런데 제주올레 안내책에는 난이도가 '상'이다. 짧지만 힘들다는 얘기다. 설마 했는데 역시 짧고 굵다. 펜이 인생관과 일맥상통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다른 코스는 바다 내음, 갯내음 맡으면서 여유롭게 걸었다면, 9코스는 산 내음, 풀 내음 맡으면서 땀 좀 흘리는 코스다. 두 발 외에 두 손도 조금 필요한 코스다.
제주도에 오니 버찌 나무가 많이 보인다. 돈이 되는 돈나무만큼이나. 1-1코스 우도의 우도봉 넘을 때 무쟈게 따 먹었다. 오늘도 버찌 열매를 따 먹으며 달달하게 오른다. 박수기정은 마실 샘물 '박수'와 솟은 절벽 '기정'이라는 뜻이다. 박수기정 초입에 오르다 보면 군산(334m)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고려 말기 원나라가 제주를 통치할 때 군마육성소가 있었는데 공마를 기르는 곳을 '공말캐'라 했다. 원나라에 바칠 말을 운송하던 길이 '몰질'이다. 겨우 말 한 마리 지나갈 정도로 아주 좁은 오르막길이다. 선조들의 아픔이 전해져오는 듯하다.
오르내리락을 서너 번 반복하며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 최후의 발악을 하며 파놓은 월라봉 중턱의 동굴도 볼 수 있다. 말과 소들이 다니기 때문에 올레길 중간중간에 동물이 다니지 못하도록 철재물을 설치해 사람이 빙글 돌아가야 하는 곳도 이색적인 체험이다.
황개천 다리의 중간 스탬프를 찍으며 5km를 갓 넘긴다. 한국남부발전소를 지나 마을로 이어지는 올레에는 마을 당산나무와 마늘밭을 볼 수 있다. 산방산 유람선 타는 곳, 화순해양경비안전센터를 지나면 종점이 나온다. 바로 화순 금모래 해변의 올레 안내소다. 11:50분 도착이다. 3시간이 채 못 걸렸다.
올레 안내소 앞 명순이네 식당에서 전복 해물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2마리 전복을 이미 먹어 버린 후 찍었다. 제주의 특별 음식이다. 밥도 조금 주는데 해물 라면에 말아 먹으니 시원하다. 가격은 9,900발.
산방의 전설 믿거나 말거나~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하다 그만 실수로 쏜 화살이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혔다나ㅎㅎ 화가 난 옥황상제는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던졌는데 그때 던진 흙무더기가 지금의 산방산이라고 한다. 한라산 백록담의 둘레가 산방산 밑동의 둘레가 비슷하다고 한다. 산방산 높이는 395.2m로 제주도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금모래 해변이라 해서 확인하러 갔다. 일반 모래는 약간 하얀 기가 있다면 화순 금모래는 약간 붉은 계열의 금빛이 감돌았다.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길이 250m, 폭 80m로 아담한 해변이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형제섬, 마라도, 가파도의 3개의 섬이 조망된다. 그리고 한라산, 군산, 산방산, 송악산, 단산의 5개 산이 둘러싸인 풍광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금빛 모래가 많아 붙인 이름으로 실제 금모래에 금 성분이 있다고 한다. 1966년까지 광산회사에서 실제 채굴했다고 한다. 금을~ 금.금.금ㅎ
모래사장을 무심코 지나가다 포트 홀이 생기면서 발이 빠졌다. 앞에 개울이 바다와 만나는 곳인데 모래 속의 모래가 물에 씻기며 구멍이 생겼나 보다. 발이 빠지자 순간 몸을 뒤로 젖혀 큰 변은 모면했다. 셀카봉에 있던 핸드폰은 다행히 물 쪽으로 빠지지 않았다. 휴~ 안도의 한숨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오후 3시 20분 산방산 유람선을 탔다. 올레 크루즈도 운행한다. 유람선은 하루 3번, 소요시간은 1시간, 승선비 17,500발이다. 선장의 해학적인 설명에 승객들이 박장대소한다. 눈은 기암괴석과 조그마한 섬들을 보고 귀는 말 재주꾼의 익살스러움에 스트레스가 뻥 뚫린다. 약 50분간의 유람에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만은 훨훨이다.
동네에서 저녁을 먹고 또 내일 돌 코스를 미리 공부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 않았는가!
식당을 개조하여 만든 '덕후 게스트하우스'는 크고 넓다.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며 여러 종류의 방이 있고 게하는 1인당 20,000발이다. 저녁 7시에 게스트들끼리 파티를 하는 데 참여를 희망하는 분은 회비 15,000발, 메뉴는 쥔장 맘대로라고.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오는데 수족관 차에서 해물을 내린다. 아마 파티용 같다. 낯선 사람과 서로 어울려 소통하는 그런 긍정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젊은이들 속에 끼어든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돼 다음 기회로 넘긴다. 아직 여행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한 번쯤 도전해봐야겠다. 나이를 잊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경제활동>
명순이네 해물 전복 라면 9,900
덕후 게스트하우스 20,000
산방산 유람선 17,500
평수네 식당 저녁 7,000
계 54,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