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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Jan 09. 2019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카톡...

작년 크리스마스 날 불의의 사고로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6일간 버티다 부모 자식 간 서로 작별의 인사도 없이 허망하게 하늘의 별이 된 아들...

현대 의술로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무책임한 의사의 속수무책 답변에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온통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그 자체였다.


응급실에서 간간이 움직이는 네 수족과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숨 쉬는 아들을 보며 한 가닥 희망을 가졌는데 이렇게 무참히 짓밟는 의사가 너무나 미웠단다.

수술하기 위해 네 머리까지 모두 밀었는데...

결국 수술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라니...

부모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슬펐다.

자괴감이랄까...

아들 미안해...


아들은 착해서 유독 친구가 많았지.

소식을 듣고 온 여러 친구들이 입원에서 장례까지 날밤 새는 것 보고 깜놀했거든.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아빠가 고2 너 나이 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면 네 친구들처럼 이렇게 같이 해줄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없다는 거야...

중고교는 물론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고교 선생님을 비롯해 중학교 은사님도 조문 온 걸 보면 아들이 인맥관리 하나는 똑 부러지게 했나 봐.

그렇게 아들은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였고...


중환자실에서 아들과 눈 한 번 못 마주치고 네 말소리 한 번 못 듣고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어...

네 몸에 연결된 모든 호스와 전선들이 한 가닥 희망처럼 보였는데 결국 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료진의 말에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매달려봤지만 허사였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인 의사도 손을 쓸 수 없으니 자포자기가 되더라...


그래서 아들에게 굉장히 미안했지만 가족회의를 통해 너의 장기 일부를 기증하는 결정을 했어.

우리 아들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고 네 눈과 심장과 또 다른 장기가 세상 어느 하늘 아래 누군가의 몸에서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 아닌 위안이 되는 듯했어.

여섯 시간마다 총 네 번 정밀 뇌파검사를 하는데 아주 미세하게 흔들림이 있었어.

네가 살아 있단 증거지..

그래서 아들이 몸에 메스 대는 거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장기기증을 포기했거든...

그때 장기받을 사람들도 이미 정해졌는데...
그분들에게는 희망이 절망이 되는 순간이었을 거야. 정말 죄송하기도 했어.



그때 캐나다에 유학 중인 너와 가장 친한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

다른 지역에 여행 중에 네 소식 듣고 오다 비행기가 연착해 이틀 만에 병원에 도착한 거지.

아들이 그 친구를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꺼져가는 생명줄을 부여잡고 뇌파를 발생했을까 생각하니 고맙기도 해...

그때 장기기증을 포기하고 친구를 만나게 해준 게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해.

결국 아들은 절친을 만나고 세 시간 만에 삶의 끈을 놓은 것 같아...

갑자기 수치가 뚝뚝 떨어졌거든...

그렇게 캐나다 친구를 만나고 하루 만에 아들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로 갔어.

하늘의 별이 되어 지금도 엄마 아빠 누나들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해...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내가 가고 네가 여기 남아야 하는데 뭔가 순서가 바뀌었지...

부모로서 아들과 이승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딱 17년 2개월...

아빠 생일날 아침에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난 아들

위로 십 년 터울인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 아들

우리 가족에게 희망과 기쁨을 준 아이

그런데 이렇게 황망하게 떠날 줄이야...

그것도 작별의 인사 한마디 없이...


모든 장례 절차를 생략하고 화장장으로 가려다 병원에서 날밤 샌 친구들을 위해 하룻밤 장례식장에 있었어.

끊임없이 친구들과 선생님의 조문에 참 슬픈 표현이지만 너의 장례는 쓸쓸하지 않았어...

네 친구들이 탁자 주변에 앉아 슬픈 눈으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며 오열했단다.

꽃으로 치장한 영정을 보면서 하염없이 쓰디쓴 눈물을 토해냈지.

"너 혼자 여기에 있을 게 아니라 네 친구들과 저기 탁자에 있어야지, 왜 그렇게 웃고만 있니?"

아빠 엄마 형제만 참석한 조촐한 가족장에 장례기간이 짧다 보니 새벽 1시가 넘어서 오는 친구들도 있고 발인 날 아침에 오던 친구들도 있었어.


그렇게 시간은 가더라...

아들에게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일주일 간 병원에 있다 보니 녹초가 되더라.

엄마는 실신하기를 여러 번...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오더라...

그래서 새벽 4시 아들 생각에 흐느끼며 아들에게 톡을 보냈어.

날만 새면 네 육신은 이 세상에 없어지는데...

마지막으로 톡을 보낸 거지...

사실 아들에게 보낸 톡을 오늘 보면서 울적한 마음에 톡 얘기만 하려고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풀어놨네...


사무치게 보고 싶은 아들아...

잠들기 전에 너를 꿈에서라도 볼까 봐 일부러 네 영상과 사진을 뚫어지게 보곤 한다.

근데 아들이 안 보여...

왜일까...

어떡하면 간절히 보고 싶은 네 얼굴을 볼 수 있겠니...

그동안 너에게 못 했던 말할게...


"아들아 사랑한다...

정말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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