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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Jan 10. 2019

제주올레 완주 22일째 18코스 절반+19코스(30km

아기자기한 맛 그리고 그대여 상처를 보듬어라

원담봉

  어제 친구 덕분에 느슨해졌으니 오늘은 거리를 좀 늘립니다. 단, 스피드는 평소대로. 예전보다 1시간 빠른 8시에 숙소에서 나옵니다. 삼양 검은모래 해변을 뒤로하고 원담봉 쪽으로 향합니다. 불탑사 입구부터 날로 짙어져 가는 녹음과 새들의 요란한 재잘거림 그리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부딪히며 서걱거리는 나뭇가지 소리에 흘러가는 구름도 쉬어갑니다. 길손도 마찬가지죠. 산, 밭, 바다가 10분 안에 조망됩니다. 불탑사의 연등을 바라보며 원담동 새들과 작별합니다.




  문서천까지 밭 사이로 난 좁은 올레를 걷습니다. 구름 낀 잿빛 하늘 아래 연둣빛, 초록빛 그리고 약간 노르스름 작물과 황톳빛 흙에 매료됩니다. 자연이 빚어낸 총천연색에 시신경이 마구 꿈틀거립니다. 또한, 시시각각 찾게 되는 올레 리본 때문에 수정체 운동으로 시력도 좋아질 것만 같습니다. 제주 오기 전 한 달 이상 지속한 감기 천식이 올레를 걷고 2주 만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와서 육신은 비록 피곤할지라도 스트레스받을 일 없으니 나을 수밖에요. 이대로 영원히 제주에 살고 싶습니다. 올레를 걸을수록 발길 닿는 대로 바다건 숲이건 그냥 길이건 걸으면서 글을 구상하며 누에 실타래 풀듯 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남생이 못

  이게 헛생각이었을까요... 미쳐 리본을 보지 못하고 올레를 벗어납니다. 그 덕에 '남생이 못'을 보게 되었습니다. 풀벌레와 개구리 그리고 새들의 한여름 밤 교향악이 연주될 것만 같습니다.




닭모루

  바닷가로 튀어나온 바위가 닭의 볏을 닮았다는 '닭모루'의 특이함을 눈에 아로새깁니다.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좋은 소식 기대와 임금을 사모하는 충정을 보냈다는 '연북정'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갑니다.




  어느덧 마을로 접어들면 제주 고유의 돌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많습니다. 바람이 많으니 지붕을 새끼로 동여맨 집들도 보입니다. 바닷가 올레를 걷다 보면 남탕, 여탕 글씨를 자주 봅니다. 노천탕이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한라산 자락에서 지하로 흘러나오는 민물이 바닷가에서 솟은 물인 용천수를 활용한 것입니다.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는데 여름 제철이 아니라서 다행히 금남의 집 여탕에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용천수를 활용한 샘도 있습니다. 마침 한 할머님께서 싹이 난 감자를 손질하고 계십니다. 펜이가 누굽니꽈ㅎ 일단 인사부터 합니다. 그리곤 질문 공세~ 만조가 되면 용천수 샘도 함께 물에 잠긴다. 빨래나 허드레 것은 간단히 씻지만, 음용에 부적합해서 먹지 않는다. 그리고 노천탕은 여름철에 실제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이상한 안내판이 눈에 띄어 바로 확인합니다. '다이빙 금지!' 안에 들어가니 노천탕입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미끈거립니다. 한여름 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시원하게 멱을 감는 자신을 그려보며 실소도 해봅니다.



  우도에서 말리는 검은 우뭇가사리를 봤는데 이곳 신촌 포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것은 주황색과 붉은색입니다. 점차 건조되면서 검은색으로 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흐린 날씨에 걷기는 딱 좋습니다. 하지만 한라산 조망은 노땡큐ㅜㅜ 그저 희미하게 형태만 볼 수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오늘은 어디에서도 좋은 뷰는 잡히지 않습니다.




조천연대와 18코스 끝점이자 19코스 시작점

  조천연대를 오른쪽으로 끼고돕니다. 낮은 제주도 지형에 커다란 탑은 꽤 높아 보입니다. 조천만세동산에 왔습니다. 18코스 끝점이자 19코스 시작점입니다.




  1919년 3월 21일 신천, 조천, 함덕 사람들이 미밋동산(조천동산)에 모였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만행에 항거하기 위해 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기념해 만든 조천만세동산에 애국선열추모탑, 항일운동기념관, 독립유공자비를 세웠습니다. 이런 선열들이 계셨기에 펜이는 이렇게 그 단물을 먹으며 한가롭게 유유자적하고 있어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육지의 아카시아꽃을 닮은 노란 꽃이 나타납니다. 샛노란 꽃을 따서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어봅니다. 아카시아처럼 달짝지근한 맛은 없습니다. 커다란 키에 초록 삼베 모시 적삼 입은 전봇대가 시원합니다.




  고려, 조선 시대에 삼별초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돌성인 환해장성의 긴 행렬을 보면서 지나갑니다. 저 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고통을 겪었을까요...




  바닷가에 외로이 떨어진 커다랗고 노란 간판이 보입니다. '문개항아리 카페', '문개'는 문어의 제주어입니다. 현 시각이 11:30분. 카스텔라로 아침을 때우고 장거리를 가야 하니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ㅈ메뉴는 문개집이니 당연 문어 라면입니다. 문어가 발 3개를 늘어뜨리고 어서 잡숴봐요~ 하는 것 같습니다. 문어만 든 게 아니라 딱새우, 꽃게, 조개 등 해산물이 들어 있어 빨간 국물이 시원합니다.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먹은 해물 라면만큼이나 맛있습니다. 한라봉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으며 뷰 좋은 바다를 바라보는 호사와 여유를 부려봅니다.




  맛있는 점심을 뒤로하고 어느덧 신흥 포구에 당도합니다. 신흥리 큰물에서 단물(민물)이 아래쪽으로 흐르는 내(川) 쇠물깍에 드리워진 초록 나무와 빨갛고 파란 지붕이 아름답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원색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시끌벅적한 곳에 당도합니다. 한가득 쌓은 미역을 손질하는 아낙네들의 수다와 바쁜 손질이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길손은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와 바쁜 손길 그리고 아줌씨들의 숫자에 짓눌려 말 한마디 못하고 스칩니다. 함덕 포구 사람들입니다.




서우봉과 함덕 해변

  하얀 백사장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이미 사람들은 여름을 맞은 듯 모여듭니다. 함덕 서우봉이 야자수와 어울려 퍽 이국적입니다. 살진 물소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형상이라 '서우봉'이라고 합니다.




너븐숭이 4.3기념관과 희생자의 그림

  이곳 역시 일본의 손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동쪽 기슭에 21개의 동굴 진지가 그대로 남았다는데 올레를 따르다 보니 보지는 못했습니다. 올레를 돌면 돌수록 우리의 섬 제주가 생채기만 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때 101년간의 몽골 지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중국을 침략의 교두보와 연합군을 방어하기 위해 진지로 삼았던 제주도, 이승만의 정치적 야심으로 미국의 사죄를 받아 7년간 3만~5만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제주 4.3사건. 현대사의 사건은 아직도 미완의 숙제로 남았습니다.




  18코스의 곤을동 마을 터나 19코스 북촌리 너븐숭이 4.3 기념관뿐만 아니라 제주도 곳곳에 그 아픈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1947. 3. 1 일부터 시작된 주민의 죽음이 올해로 딱 70년이 됐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 행해졌던 치유의 정책이 이제 새로 태어난 정부에서도 바통을 이어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그 아픈 상처를 보듬어야겠습니다.




애기 무덤과 현기영의 순이삼촌 문학비

애기 무덤과 현기영 작가님의 '순이 삼촌 문학비'에서 애절함이 더욱 묻어나옵니다. 펜이는 올레 걷기 전에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 리뷰(http://naver.me/FMVivy0e)도 남겼습니다.




  19코스에서도 펜이가 좋아하는 곶자왈을 만났습니다. 긴 여정의 피로를 곶자왈이 씻어주는 듯 반갑습니다. 밀림 속으로 스치는 한줄기 햇볕을 커다란 울음을 울며 움직이는 동그란 바람개비 그림자를 만드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앞에만 서면 펜이는 아주아주 작아집니다. 거인 풍차입니다. 태양광 발전기...




  종점 김녕이 다가오자 올레 기행문에서만 봤던 조각보의 연출이 시작됩니다. 일정하지 않은 조각 헝겊을 덧대 바늘로 꿰맨 것처럼 밭의 모양이 그렇습니다. 초록과 연둣빛, 노랑과 황톳빛 그 사이로 검은 돌담들. 이게 조각보입니다. 밭길을 지날 때는 모릅니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자연의 그림 색색이 조각보가 아름답습니다.




  아기를 대동한 올레 부부를 서우봉에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결국 종점에서 간발의 차로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처로, 펜이는 함덕의 사우나로 갈 때도 같은 버스를 탔습니다. 2010년부터 시간 날 때마다 올레를 찾는다는 젊은 부부. 19코스 중간 지점 동복리 마을 운동장에서 스탬프 찍을 때 본 그들의 올레 패스포트는 펜이 것과 달랐습니다. 펜이 것은 청색 합본인데 그들의 것은 청색과 주황색 2권으로 지나온 세월을 말해줍니다. 그들의 따스한 물과 펜이의 커피가 만나 짧은 휴식을 만듭니다. 세 살의 어린 나이에도 잘 따라다니는 사내아이를 둔 부부. 부부가 서로 번갈아 가며 아이를 업고 다니는 모습이 정겨웠던 그들. 아이를 데리고 19코스 19km를 완주하는 그들은 진정 올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수도권에서 온 젊은 부부를 만난 것도 30km라는 장거리를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정작 같은 버스를 탔어도 만원 버스라 내릴 땐 아쉬운 작별의 인사도 못 나눴습니다.



함덕 해변과 서우봉에서 만난 화가 작품

  오늘은 펜이 블로그 이름처럼 '나 태어나 첫 경험' 무려 30km를 걸었습니다. 사우나까지 다녀온 만보기는 거의 5만 보에 이른 것에 펜이도 깜놀했습니다. 올레 걸을 땐 평균 3만 보였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습니다. 일찍 잔 덕분에 새벽에 올레 완주기를 블로깅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오늘의 여정



<오늘의 경제활동>

점심 조천읍 신흥포구 문개항아리 문어라면 8,000+한라봉 아이스크림 2,000

함덕 해오름 해수 사우나 8,000

저녁 함덕 제주깜돈 해물뚝배기 10,000

함덕 버스비 2,600

김녕 이모와 삼촌네 게스트하우스 25,000

계 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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