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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피 D+1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by 펜이
제주올레 걷다 허공에서 만난 아들


20180404_084709.jpg 올레 코스 중 가장 쉬운 7코스

제주 도피 이틀째
첫 밤을 설쳤다.


환경이 바뀌어서일까...

평소처럼 늦게 일어나려 했으나 아침 일찍부터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에 눈을 떴다.


육지 도시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환경이다.

작년 초 명퇴 후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려고 아침 기상 이후 시간을 쪼개어 잘 지내왔다.


그런데 작년 말 참척(慘慽)의 아픔을 겪은 후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특히 마눌님이 더욱 심했다.


마눌님은 병원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온밤을 비몽사몽 헤매다 오전 11시가 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펜이도 그렇게 젖어갔다.

그런데 오늘 제주의 아침은 새들의 합창 소리에 혼자 일찍 시작했다.


단잠에 빠진 마눌님을 두고 간소복으로 길을 나섰다.

숙소제주올7코스(제주올레여행자센터~월평마을 17.7km) 통과 지점이다.

20180404_083441.jpg 외돌개

아침 운동으로 숙소에서 외돌개까지 약 2km 이어지는 올레 코스는 힐링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 길손의 방문에 새들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반겨줬다.


년 올레 완주 할 때 만난 돌고래의 유영 지점에서 혹시나 하고 바다를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홀로 걷는 올레는 무상무념 그 자체였다.


외돌개에 도착해 갑자기 마음이 착잡해졌다.

작년 여름 막내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던 모습이 생생했다.


녀석의 흔적에 또다시 가슴이 뻥 뚫려버렸다.

당혹스럽다.


녀석과 함께한 장소에서 추억 찾기를 하려 했는데 더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장소를 피해야 할까...


펜이 혼자라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내가 발을 내디뎌 앞으로 가는지 길이 스스로 움직여 나를 끌고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강한 생명력이 깃든 석부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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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부작 박물관

점심이나 다름없는 늦은 아점을 먹고 숙소에서 가까운 '석부작박물관'을 찾았다.

화산석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생명력에 숭고하기까지 했다.


봄을 맞아 자태를 뽐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도취해 벤치에 앉아 멍때리기도 안성맞춤이다.

벌써 한낮 기온은 20도를 넘겨 등줄기에 땀이 괸다.





아기자기 알록달록 세계조가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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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조가비박물관

다시 발길은 서귀포 외곽의 '세계조가비박물관'으로 향했다.

수수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조가비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작년 올레 체험 때도 봤건만 또다시 봐도 신기하다.

마눌님도 신기한지 동영상 기록을 남긴다.


마눌님은 진열된 진주목걸이 다발을 한 웅큼 쥐더니 목에 걸고 포즈를 취했다.

옆에 포토용이라고 쓰여있어 안심했다.


조가비로 만든 갖가지 작품에 혼이 쏙 빠졌다.

잠시나마 한 가지에 전념할 수 있어 좋았다.




제주올레 5코스에서 한반도를 찾다


큰엉해안경승지
20180404_142255.jpg 한반도 지형 나무 터널
보리수 열매

아침에 펜이만 올레의 묘미에 푹 빠져서 미안했다.

그래서 마눌님에게 올레의 맛을 보여줬다.


함께 올레 5코스(남원포구~쇠소깍 14km) 중 일부를 걸었다.

큰엉해안경승지에서 위미3리 포구까지 왕복 2.5km를 걸었다.


5코스 묘미는 확 트인 수려한 바다 풍경과 하늘을 드리운 기나긴 나무 터널이다.

그중에서도 터널 사이로 나타나는 한반도 지형이 백미 중의 백미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완전히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다.


시원한 나무 터널과 확 트인 제주 바다에 매료된 마눌님은 폰카로 기록을 남기는 모습에 다행이다 싶다.

펜이 부부는 이렇게 자연을 통해 3개월 전의 크나 큰 아픔이 치유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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