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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피 Day 법적 제주도민이 되다

by 펜이

새벽에 출발한 꼬마캠카는 봄바람에 하얀 꽃잎을 흩날리며 완도항에 도착했다.

절정을 맞은 벚꽃에 설레발이다.

완도~제주 간 블루나래호

짙은 안개로 우여곡절 끝에 점심때가 되어 제주 땅에 도착했다.

8개월만이다.


제주는 펜이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랄까...

엄니 품처럼 편안하고 모든 시름이 확 달아난다.


싱글벙글한 펜이 모습을 보고 마눌님이 한 방 날린다.

"당신 고향에 온 것처럼 그렇게 좋소?"


제주항과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도두항'에 도착했다.

제주 섬의 머리라는 뜻이다.


먼저 '어머니와 고등어' 식당에서 점심으로 갈칫국을 먹었다.

비린내 없이 담백하고 개운했다.


작년 올레 완주 때 먹었던 추억을 마눌님에게도 권했는데 괜찮나보다.

도두항에서 이어지는 도두봉에 올랐다.


도두봉으로 이어지는 벚꽃은 벌써 저만치 떠나가려 한다.

육지는 한창인데...

도두봉에서 바라본 한라산

도두봉에서 바라본 제주국제공항의 활주로는 붐볐다.

여행의 꿈을 안고 도착하는 이와 추억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떠나는 이가 쉴 새 없다.


바다 물안개가 훈풍에 못 이겨 이내 섬으로 밀어붙치는 모습이 몽환적이다.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행락철이지만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가는 곳마다 하얗, 노랑, 연분홍, 붉은 수줍음이 있어 좋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바람을 맞으니 펜이 부부 머리가 개운하다.

30여 년 전 이맘때의 제주도 신혼여행이 생각났다.

이호테우 해변의 목마등대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며 도두항 '추억愛거리'의 익살스러운 꼬맹이 조형물을 보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하얀과 빨강의 목마등대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이호테우 해변은 겨우내 묵은 체증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분홍빛 개살구꽃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의 꼬불꼬불한 유채꽃길을 함께 걸을 땐 시간이 멈춰주는 듯 했다.

정자에 누워서 보는 분홍빛 개살구꽃과 청보리 그리고 파란 하늘은 선물과도 같았다.

항파두리 유적지의 유채꽃

제주의 푸른 해안도로와 연둣빛 중산간 지대를 느릿느릿 내달렸다.

최근에 본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영화가 떠올랐다.


'제주 4.3'을 다룬 영화로 벌써 70년 전의 우리의 아픈 역사다.

뉴스를 들으니 노무현 정부에 이어 두 번째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제주를 찾은 모양이다.


'광주 5.18'처럼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밝혀 산 자와 죽은 자의 아픔을 치유했으면 한다.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고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초록 물결 청보리와 파람 속의 뭉게구름이 도피하기에 딱 좋다.

휙휙 지나가는 둥글둥글한 낮은 오름은 대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상큼함이 폐부 깊숙이 빅힌다.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숙소에 도착 전 제주 도피지 등록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

제주도민이 되는 절차인 전입신고부터 했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 쓰인 깨알 같은 제주도 주소에 기분이 야릇했다.

나 태어나 첫 제주도 신고식이다.


서귀포 바닷가 어느 마을의 한적하고 갖가지 꽃으로 치장한 숙소에 마눌님이 감탄해 한다.

"여보 아무 생각이 없어요~"


펜이도 머리가 텅 빈 듯 무상이다.

제주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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