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제주도에 첫발을 내디딘 날이 '제주4.3사건' 70주년이었다.
뉴스와 거리 선전탑만이 묵묵히 4.3사건을 대변했다.
작년에 제주올레를 걷기 위해 사전 지식이 필요했다.
도서관에서 올레 정보를 얻다가 '제주4.3사건'을 알게 됐다.
그래서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촌"을 비롯해 허영선 시인의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신여랑, 오경임, 현택훈이 함께 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4·3은 왜?" 등 몇 권의 책을 통해 개략적으로 파악했다.
올레를 걸으며 '너븐숭이4.3기념관'과 주변의 애기 무덤, 현기영 님의 문학비를 보고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게 됐었다.
오늘은 마눌님과 함께 '제주4.3사건'의 현장을 찾았다.
먼저 '제주4.3평화공원기념관'이다.
휴일이라 많은 사람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해방의 단잠에서 깨나기도 전인 1947년 3.1절에 촉발된 '제주4.3'은 한국전쟁이 끝나고서도 1954년까지 무려 7년간 이념 논리에 무장대와 토벌대에 의해 무고한 양민 3만 명 이상이 죽어간 사건이다.
기념관에 정의된 '제주4.3사건'이란 정의를 보자.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기념관에는 연도별로 사건의 내용을 잘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마눌님은 광주5.18을 연상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보다.
'제주4.3사건'의 대명사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4.3기념관'은 더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13km 떨어진 불에 타 사라진 곤을동 마을터 현장만 둘러봤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돌담과 무심한 잡초만이 죽음을 대신했다.
무려 제주도민 30만 명 중 10%인 3만 명이 희생됐다.
그것도 우리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과 경찰 그리고 무장대의 손에...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빨갱이"란 올무를 씌워 끝까지 쫓아가 죽였다.
집단 총살은 물론 집과 마을 전체를 불태워 마을 자체가 사라졌다.
지금도 그 흔적만 남은 마을이 부지기수...
미국의 비호 아래 친미주의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까지 나서 제주를 싹쓸이 하였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석부작박물관의 카페 쥔장이 들려준 친할머니의 4.3사건 경험담을 수없이 듣고 자란 얘기가 떠오른다.
마을에서 때론 밭에서 때론 거리에서, 숨어 있는 움막과 동굴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와 절규들...
한국전쟁이 끝나고 박정희 독재에 이어 군사정권까지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지내왔다.
보안법 소위 "연좌제" 때문에 자식들에게 또 다른 고통과 아픔이 대를 이었다.
그러다 2000년 국민의 정부에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2003년 참여 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2008년 '제주4·3평화기념관' 개관과 2009년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이 개관했다.
2011년 명예회복위원회에서 희생자 14,033명을 결정하고 2014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다.
이번 70주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을 찾아 위로하고 사건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기념관을 세우고 추념일을 지정한다 해서 제주도민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위들을 통해 후대가 잊지 않을 것과 또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설민석 역사 강사의 제주 이야기를 링크해본다.
- 허영선, <무명천 할머니(월령리 진아영)> -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 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