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간밤에 바람이 엄청 불더니 창문까지 들썩였다.
마치 한여름 태풍이 불듯...
아침에는 비바람 치더니 눈발까지 흩날렸다.
낮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햇볕까지 드리웠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데 여자보다 더 심한 건 제주도 날씨다.
갑자기 추운 날씨에 길가에 핀 꽃들이 애처롭다.
봄꽃의 아름다움을 하늘이 시기하는구나.
낮에 날이 좀 뻔해지자 길을 나섰다.
멀리 가는 건 포기하고 도피처 앞 올레 7코스를 마눌님과 함께 걸었다.
만약을 위해 비옷까지 챙겼다.
외돌개를 지나 황우지 선녀탕 옆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마눌님 바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난여름 휴가 때 선녀탕에서 아들과 함께 스노클링 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먹는 것도 잊고 물속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스노클링을 즐기던 녀석이었다.
아직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난 녀석 때문에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선녀탕은 여름이 아니라 별 것 없다며 인근의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의 진지 굴인 '황우지 12 동굴'로 이끌었다.
외돌개 휴게소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졌다.
준비한 우의를 입고 다시 원점회귀다.
돌아오는 길에 부는 바람에 비까지 내리니 상당히 춥다.
다행히 비옷이 어느 정도 방한이 되었다.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에 어디에 촉을 두고 행동해야 할지 난감하다.
도피처에 도착해 궂은 날엔 영화가 제격이라 근처 제주월드컵경기장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다.
기대했던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예고편에 낚인 느낌이었다.
서귀포항 부근 맛집 '올레일품'에서 먹은 전복해물갈비전골은 맑은 탕으로 얼큰하면서도 육해군의 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볶음밥은 누룽지까지 가미되어 배가 부른데도 숟가락질은 멈출 줄 몰랐다.
제주에 온 후 라이트를 켜고 귀가한 첫날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