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효원의 화려한 튤립에 반하다
참척(慘慽) 이후 변화된 일상이 제주 도피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펜이와 달리 마눌님은 오전 10~11시 사이 기상이다.
간밤에 잠을 설치다 늦게 약을 먹고 잤나 보다.
기상이 늦다.
펜이는 마눌님 잠 깰까 봐 조용조용 밥을 하고 김치찌개를 하고...
12시가 넘어 아침 아니 첫 끼니를 단둘이 해결했다.
집에서 가져온 김장김치에 어제 꺾은 고사리와 제주 특산 흑돼지 앞다리로 만든 김치찌개는 없는 입맛도 생길 지경이었다.
맛있게 먹어주는 마눌님이 고맙다.
먹고 힘내야지~
아점은 펜이가, 저녁은 마눌님이 하기로 밥숟갈 뜨며 약조했다.
오늘 하루는 가볍게 보내기로 하고 차 시동을 걸었다.
한라산 줄기에 자리 잡은 '상효원'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한산하다.
1인당 9,000원의 입장료를 제주로 도피한 주소가 기재된 신분증을 보여주니 30% 할인이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제주도민에게는 입장료가 할인된다.
주소를 옮기기를 잘한듯싶다.
마트에서 생수를 사는데 500mL가 육지의 30% 할인가로 판매되어 깜놀했다.
2L들이는 더 할인되고 도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상효원에 입장하자마자 나타나는 빨강 분홍 튤립 꽃단지는 길손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그 화려함에 사진 한 장 안 박고 갈 못난이가 과연 있을까ㅎ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각종 정원과 튤립 꽃단지는 방문객 모두를 설레게 하는 데 충분했다.
마눌님과 셀카를 참 많이 찍었던 것 같다.
꽃길과 곶자왈(제주의 훼손되지 않은 숲) 사이로 부는 바람에 갑자기 추워지는 느낌이지만 봄의 정취를 제대로 느꼈다.
젊은 연인들도 함께 온 가족도 중년의 여성 친구들도 모두 꽃 앞에서 싱글벙글이다.
푸른 잔디에 우뚝 솟은 수백 살의 부부 소나무 주변에 소풍 나온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래서 봄은 식물뿐만 아니라 만인에게 희망의 방아쇠다.
펜이 부부 모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상효원'은 개인 이달우 씨가 25년간 가꾸어온 수목원으로 8만 평의 규모다.
3~4월은 튤립 축제, 5월은 루피너스 축제, 6월은 백일홍 축제, 7~8월은 산파첸스&곶자왈 축제, 9~10월은 메리골드 축제가 열리니 계절에 따라 멋진 꽃들의 향연과 정원의 상큼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같은 쇠소깍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하효동의 '쇠소깍'에 들렀다.
화산 지형답게 양쪽 절벽은 병풍처럼 깎아지른 듯했다.
절벽 바위 위의 푸른 소나무와 밀물로 높아진 강물(바다 인근이라 바닷물일 수 있겠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었다.
물은 푸르다 못해 시푸르딩딩했다.
작년 봄 올레 완주 때 봤던 멋진 모습에 지난여름 가족과 함께 왔지만 썰물 때라 실망했었다.
다행히 오늘은 쇠소깍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눌님께 선사할 수 있어 좋다.
쇠소깍은 제주올레 6코스(쇠소깍~서귀포 올레여행자센터 11km) 시작점으로 올레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효돈천을 따라 천변에 조성된 숲 사이로 난 포토존은 기념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마눌님은 쇠소깍에 오자마자 막내 이름을 들먹인다.
이곳에서 함께 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나 보다.
부부는 이심전심인가 보다.
그러잖아도 끊임없이 보고픈 데 녀석의 흔적이 남은 곳에 오니 함께 있는 듯 옆을 쳐다봤다.
그래서 마눌님에게 함께 셀카 찍자고 더 보챘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만이 함께 감당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