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처럼 전세는 전세다.
이사를 했습니다.
전세 살다가 자가로 이사를 하니 너무 좋습니다. 무엇이 좋냐면 뭔가 마음이 안정되고 아늑하고 누군가 다그침 없는 안정된 마음이 되었습니다. 전세 사는 집에 대해 나눠 보겠습니다. 집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더니 끝까지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이 집에 전세 들어오기까지의 사연도 이렇습니다.
“당신이 새집 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전세 계약했어.”
“진짜? 와 부엌도 넓겠네... 아싸”
“그럼 넓고말고. 당신이 마음껏 새집에 살도록 해 주마.”
“역시 우리 남편 최고야.”
이런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전세 들어갔어요. 웬걸 부엌이 완전 꽝이었어요. 수납이 전혀 안 되는 곳,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넓은 집이었어요. 아시죠? 수납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폭이 좁아서 어떤 물건도 쑥쑥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넓은 접시들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묵은 살림이 많은 터라 더더욱 난장판을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전세 3억짜리 집이 이 모양이니 기가 찼습니다.
이제 전세 만기가 되어 탈출하려는 순간 주인과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저희가 전세를 놓고 나가야 하는데 오는 사람마다 부엌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하는 말 “집이 지저분해서 전세가 안 나가니 집 좀 치우세요.”라는 겁니다. 주인 부부가 우리한테 찾아와서 대놓고 얘기하는 겁니다. 너무 기가 차서 한숨이 나왔는데 이제 나가려니 이런 말을 합니다.
“처음에 들어올 때처럼 새집으로 만들어 놔라.
아니면 전세금 백만 원 떼 놓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감하고 주겠다.”
“지금 들어오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하면 그거 다 보수하고 돈을 주겠다.”
“이 집에서 잘 살았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해라. 왜 안 하느냐.”
등 어이가 없는 말과 창틀 지저분한 곳을 여러 장의 사진들을 찍어 보내면서 압박과 스트레스를 줍니다. 제가 한 소리 하려다가 남편이 손짓하면서 “참아라”라고 해서 꾹 참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 나이에 새파랗게 젊은 부부가 집 한 채 사서 전세 주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서로 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남편과 함께 전세 살던 곳에 가서 1시간 동안 창틀, 베란다, 화장실 등 다용도 세정제를 듬뿍 뿌려가며 다 닦고 깨끗하게 해 놓고 왔습니다.
우리도 전세를 줬지만 살다가 갈 때 바닥만 쓸어놓고 더 이상 손상된 곳이 없으면 되는 거지 어찌 나가는 사람이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집을 만들어 놓고 가야 하는지요? 이해가 됩니까?
나쁜 말로 하면 미친개한테 크게 물린 겪었습니다. 댄 통 당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결국 그렇게 야박하게 타인을 골탕 먹이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면 그 대가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부모의 삶에 의해서 자녀한테로 내려가지요.
저희 부모는 살아생전에 타인한테 이득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게 낫지 이득을 취하려고 남을 괴롭히는 것은 그 액땜이 아래로 흐르더라고요. 아주 중요한 팩트입니다.
여러분 이런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제 제가 전세 주었던 곳에 대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새집을 사서 전세를 줬습니다. 2년 지나고 우리가 들어가려니 살던 분이 아들이 고3이라 한 번만 더 연장해 달라고 해서 그 부탁을 들어주느라 우리는 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2년 지나고 그분이 나갈 즈음 이사 날짜가 안 맞아서 다시 전세를 주게 되었어요.
두 번째도 우리가 들어가려니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서 또 전세를 줬지요. 이분들이 살아보니 너무 좋다고 더 살자고 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꼭 들어가야 된다고 하고 이번에 제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와 보니 세상에나 싱크대 위에 구멍이 3개나 뻥뻥 뚫려 있고 싱크대 문짝 8군데 쇼바가 다 고장이 나서 새로 교체를 해야 했습니다. 이쪽저쪽에 문짝에도 모서리가 다 갈라져 있었어요. 안방 비데 뚜껑도 모서리가 깨져 있었고요. 그렇지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어요. 2년이 지날 때마다 집을 샅샅이 뒤지면서 트집 잡는 행동을 했느냐? 아뇨.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던 전셋집 주인은 못도 하나 치지 말라고 하고 바닥에 키스하나 나지 않도록 하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미 헌 것이 다 되어 있었고 구석구석 손 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무슨 교훈을 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 진리를 잊지 말고 살자. 젊은 사람들은 아직 인생을 덜 살아서 그렇겠지. 인생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유한한 인생에 야박하게 살면 당장은 이득이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흐를수록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봐지고 물욕에 차면 사람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저의 남편한테 대들고 따지고 명령하고 훈계하는 이 버릇이 우리한테만 그럴까요? 부부나 자녀 관계에도 피곤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우리가 사는 집을 감시하기 위해 다른 곳에 살다가 일부러 근처로 이사를 와서 감시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러니 어찌 편하게 살 수가 있었을까요? 왠지 사는 내내 불편하더라고요.
이제 탈출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아늑하고 평온하고 축복받은 집으로요. 전세 살던 곳은 고충이라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느낌이라 안정이 안 되었고요. 베란다를 내다보면 신축 아파트 짓느라 건물을 헐어서 먼지투성이였습니다.
그런 곳에 살다가 나의 집으로 이사를 오니 초록색의 나뭇잎이 흔들흔들거리면서 주위에 새소리가 지저귀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공원 같은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 첫 출근인데 햇살이 온통 나의 몸을 흠뻑 적시는 겁니다. 제가 가는 길에 언제든지 축복이 넘치는 일이 발생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도로가 평상시에는 그렇게 막혔는데 지금은 도로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희한하게도 맞은편 도로에서 볼 때 차도가 엄청 밀리던 곳이었는데 막상 출근해 보니 15분밖에 안 걸리더라고요.
와! 역시 인생은 이런 거야.
물은 위에서 아래로,
만복은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하늘도 자연도 다 공평해.
나는 든든한 백을 믿고 이대로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