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지팡이를 닦는 의식을 치르는 상담쌤
나!
열정 덩어리, 무엇 때문에 이 딱지가 붙었을까?
어릴 때 하고 싶어도 못했던 사연들이 많다 보니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남들은 꾸준함을 애써 노력해야 되지만 나한테는 꾸준함이 늘 붙어 다닌다. 왜냐하면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꾸준함이 없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말살되기에 나는 노력해야만 했다.
남들은 3년이면 완성되는 것을 나는 10년이 지나야 될 똥 말똥 했다. 심리상담도 20년이 지나니까 이제야 아주 미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성취라고 할까 그 정도다. 상담은 임상경험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는 달라진다. 세월이 말해준다. 올해 22년 차에 상담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나를 표현하는 이력서가 되었다.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책에서 읽었다. 지팡이를 닦는 의식의 사례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성찰을 위해 상상으로 지팡이를 닦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가볍게 지팡이와 천조각 그리고 올리브기름을 준비한다. 지팡이를 닦을 수 있는 값비싼 기름도 준비한다. 그중 한 남자가 선택을 한다. 한 남자는 천조각과 올리브기름을 손에 잡고 아무 생각 없이 지팡이만 닦는다. 누가 뭐래도 난 하루 종일 지팡이만 닦는다. 닦고 또 닦고 그러다가 결국 지팡이가 윤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닦지 않아도 윤이 나기 때문에 쉴 수가 있었다. 이제 지켜보던 심사관들이 와서 지팡이를 점검한다. 그리고 칭찬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윤이나는 지팡이는 처음 본다. 역시 다르다." 이렇게 칭찬하면서 신문에 기재하고 한 남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본인이 봐도 만족한 지팡이였다. 스스로 잘했다 칭찬해 준다. 이러한 의식을 치르다 보면 힘이 생겼다. 스스로 어디에 몰입해야 되는지 알 수 있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 지고 따라가진 않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난 방향을 잡지 못할 때마다 이 지팡이를 닦는 의식의 한 사내를 생각하면서 나도 따라 해 본다. "상담의 지팡이를 20년이 넘도록 닦다 보니 이제 내 것이 되었구나." 하면서 인정하고 공감하고 또 나눈다. 이것이 나의 이력서 한 줄이다. 나의 인생 구호는 공감하고 나눔 하고 인정하며 끝장 보는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20년 전에 이미 이런 이력서를 예정해 놓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팡이의 사례처럼 지팡이만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아도 인생 성공대열에 서는 것이다. 성공은 다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의 주 특기인 상담에 '치유 독서'도 붙이고, 상담에 '명상'도 붙이고, 상담에 '캘리그래피 글귀'도 붙이고, 상담에 '아로마 테러피'도 붙이면서 통합으로 가고 있다. 붙이고 붙이다 보니 나의 이력서가 두툼해져 간다.
이제 4년 남은 퇴직, 10년 전부터 생각만으로 준비하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본격적으로 행동했었다. 무엇으로? 바로 공심재에 등록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생전에 글쓰기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글을 쓰면서부터 난 새로운 꿈이 생겼다. 책을 내자.
남들은 이미 다 되었던 브런치 작가, 가리 늦게 되었지만 '브런치 작가'도 한 줄 쓸 수 있다. 대단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대단하다' 소리를 들었던 난 지금도 그 '대단하다'의 소리를 듣고 있다.'왜?' 그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게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남들은 "아! 그게 무슨 대단하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들이다. 나의 이력서는 이제 단단해지고 있다(내 혼자 생각에).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이럭서 주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