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성으로 통합되어 가는 듯합니다.
제목: 여성성과 남성성 관련 나의 스토리
글을 쓰자니 자꾸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나 환영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어릴 때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렇게 남자처럼 생겼을까?'라고 고민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순희야 너는 남자처럼 울퉁불퉁하게 왜 이렇게 못 생겼니? 저 다리 밑에서 누워 와서 그런가 보다. 너희 엄마 저 다리 밑에 있다. 가 봐라."라고 자꾸 놀렸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한 번 두 번 들을 때는 "그래 아버지가 장난치시는구나." 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10번 넘게 듣다 보니 "진짜 내가 다리 밑에 누워온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순수한 마음에 다리 밑에 가 보았습니다.
그 당시 거지들이 다리 밑에서 가족끼리 오손도손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일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엄마는 저분인가 이분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았답니다. 내려가서 말 걸어볼까 하면서요.
이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했더니 재미있다고 더 장난을 치시는 겁니다. 정말 속아 넘어갔죠. 그런 일이 지속되면서 거울을 보고 못생긴 내 얼굴을 한탄하면서 집착하게 되었어요. 코도 이마도 피부도 콤플렉스가 되면서 속상해했어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왜 이렇게 못생긴 거야. 진짜 내가 남자인가 하면서요.
가끔 행동도 거칠어지고, 목소리도 남자처럼 굵어지고, 여자 친구들도 나를 별로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고, 차라리 남자로 태어나지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렇게 고민을 하게 만드나 하면서 자아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하고 치명적인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바라던 아들이 아니라 은연중에 내가 남자처럼 행동하게 되었고, 천재적인 남동생을 내가 천국에 가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또 남자처럼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게 되었지요. '엄마는 내가 모신다. 내가 남자나 마찬가지니까.'
오빠들은 엄마를 모실 생각을 않는 겁니다. 모두 다 살기 바빠 객지로 다 나가 버리고 난 막내가 되어 늙으신 부모님 비위 맞추며 살아야 했습니다. 집안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꾸만 나의 성 정체성이 흔들렸습니다.
언니한테도 내 멋대로 휘두르고 내가 꼭 오빠 인양 맘대로 하고 성질도 버럭 내고 2살 차이 나는 언니는 나한테 비위를 잘 맞추어 주곤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언니죠.
청소년기 사진을 보면 진짜 사내아이 같아요. 행동을 그리 하니까 더 못나 지는 겁니다. 성인이 되어 아가씨처럼 하얀 치마에 노란 체크 셔츠를 사 입고 하얀 구두를 신고 머리는 파마를 하면서 겉모습이 여성성으로 변신했습니다. 친구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었어요. 이때부터 난 아가씨로서 여성성을 되찾았지요.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내가 이때부터 '여자'라는 것에 눈을 돌리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꾸미기 시작했어요. 아 지나간 세월이 아찔합니다.
늘 남자처럼 살다가 이 시점부터 여자처럼 살려니 얼마나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는지요. 감정도 억압하고, 말도 이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성질도 버럭 내지 않고 그렇게 살았지요.
칼 융에 의하면 남성성도 여성성도 통합이 되어야 건강한 삶이 된다고 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남편이 여성화되어 가고, 저는 남성화가 되어 가는 듯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어린 시절 남성성에 젖어들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여성성으로 맘껏 즐기고, 다시 나이 들면서 남성성으로 진보되어 가는 듯합니다. 양성성으로 통합되어 성에 대한 구분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