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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Jul 13. 2022

피그말리온 효과를 톡톡히 본 여자

내리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또 피그말리온으로 다가갑니다.

언제나 웃음으로 다가갑니다.




제목: 피그말리온 효과를 톡톡히 본 여자


제가 자라던 곳은 '경북 청송 도평'이라는 동네입니다. 가족이 3남 3여의 막내로 태어나 어쩜 가장 혜택을 못 받은 '나'이기도 하고, 어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나에게 천재 남동생이 있었죠. 그 남동생은 주위의 시선을 다 끌었답니다. 저는 대조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죠. 그런데 진짜 죽고 말았습니다. 뭐 이런 나쁜 아이가 되었냐고요? 네 저는 아주 나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의 사랑을 앗아간 동생이었으니까요. 이러한 동생 때문에 저는 악바리가 되어야 했죠. 그렇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동생이 어떻게 죽었냐고요? 


그 사연을 짧게 말한다면, 제가 8살 때 동생은 5살이었어요. 농촌에서 가족 모두 밭에 일하러 나가고 심심해서 동생을 데리고 사탕 사러 갔었어요. 그 당시 빈병을 가지고 가면 사탕을 줬거든요. 둘이서 사이좋게 양손에 빈병을 들고 차도를 지나 사탕을 사서 입에 물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자전거에 치여 넘어진 겁니다. 저는 괜찮은 줄 알고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왔는데 그때 뇌진탕이 되었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나의 책임일까요? 남동생의 운명일까요?


저의 아픔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동생의 몫까지 제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졌죠. 가장 슬픈 사람은 엄마였죠. 엄마와 저는 1년 내내 울었습니다. 전 죄책감을 가지고 살면서 엄마를 "제가 모셔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책임감이 깊어질수록 자유는 사라졌죠. 어릴 때부터 '엄마를 내가 모셔야지' 는 무거운 마음 때문에 공부가 안 되었습니다. 친구는 공부를 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성적이 늘 앞서갔고, 저는 앞서가는 그 친구를 따라잡으려고 애썼던 거 같습니다. 그 친구를 따라잡는 게 목표였죠.


저의 가족 모두가 저의 마음을 아는지 "우리 순희 대단하다."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해도 잘했다고 칭찬했고, 이것도 저것도 다 잘했다고 했어요. 심지어 방 청소만 해도 "우리 순희 못하는 게 없네. 참으로 대단하다고"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전 어안이 벙벙했어요. "내 무엇을 잘 헸지? 왜 대단하지?라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상담 공부를 하면서 딜레마에 빠진 저를 적나라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던졌다고 생각하는 그 "대단하다" 소리가 저에게는 피그말리온 효과였습니다. 




"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해. 난 엄마, 아버지, 오빠, 언니들이 말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각오를 하며 살았던 거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앞서가는 친구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바로 동생한테 느낀 열등감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 보면 저는 아직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있고, 작가 꿈까지 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따라잡지 못했던 그 친구, 우수한 그 친구는 빵집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다가 요즘 다시 소 일거리 찾아서 생기를 찾았다고 합니다. 다행인 거죠. 그 반면 저는 친구들한테서 '김 교수'로 불리고 있고요. 배움의 시작은 미미했으나 지금은 탄탄대로입니다.


이렇게 피그말리온 효과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피그말리온 효과의 주인공이 된 케이스랍니다. 저는 참 대단합니다.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아직도 가슴속에서 열정이 피어오릅니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열정요.


제가 깨닫기 전에는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엄청 애쓰며 살았지만, 지금은 노력하지 않아도 피그말리온 시스템에 젖어 들어 자동으로 잘 되고 있습니다. 저의 몸 세포 하나하나가 피그말리온 세포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 3명의 아이가 손댈 수 없이 힘든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죠. 이 아이를 한 학기 동안 피그말리온 효과로 싹 바꿔 놓았습니다. 장안의 화재가 되어 저의 진가를 알게 되었지요. 학교 현장에서 수두룩하게 일어나는 효과들이죠.


이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냐면요.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뒤로 물러나고요. 조금이라도 칭찬해 주려고 어깨에 손을 대려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랐고, 상담을 하면서 근황을 물으면 "뒷조사하는 스토커예요?"라고 하고, 수업을 하면 고개 숙이고 딴청 피우고 또는 쌩하게 고개를 돌려 버리고 수업이 안 되었어요.


하지만 끊임없이 기다려주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지그시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더니 아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겁니다. 때론 저도 상처를 받고 확 소리 질러 버릴까 싶다가도 순화를 했죠. 기다림의 연속이었지요. 


어떤 교육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눈에는 독기가 나왔고, 말만 하면 뾰족하여 제가 상처를 받았는데, 지금은 조금씩 저에게 다가오고 질문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끊임없이 수용하고 인정해주고 바라봐주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제가 피그말리온의 향기를 촉발하는 사람이 아날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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