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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06. 2021

파리 지하철에 생긴 것?

단상(5)

 바로 어젯밤 꾼 꿈은 아니고 며칠 전 꿈 이야기지만 끄적여보는 꿈 이야기.


 여행에 목이 마르다 마르다 못해 파리를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 아무래도 제일 많이 오고 갔던, 집 앞의 지하철역 본 누벨(Bonne nouvelle)역과 청사의 구조나 플랫폼으로 가기까지 통로의 모습이 비슷한 역이 꿈속 배경으로 나왔다. 지하철역 이름을 직역하자면 '좋은 소식'인데, 그 때문이었을까, 꿈속에서나마 파리에 사는 동안, 숱하게 지하철을 타는 동안 다른 건 다 필요 없어도 이것만은 있었으면 참 '좋은 소식'이겠다 싶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로 화.장.실.이 무려 파리 메트로에 생긴 것이다. 항간에 속설만 두고 보면 파리 지하철 타기란 여간 곤혹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이파이 같은 서비스는 화장실도 없는 판에 있을 리가 만무하고, 에어컨 없음은 물론이고 그 덕에 여름에 진동하는 악취라거나 노숙자부터 소매치기까지... 지하철과 엮어서 안 좋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춘 게 파리 지하철처럼 묘사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근데 그래도 100년 이상을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건데 서울과 비교했을 때의 약간의 불편함만 참으면 그렇게까지 못 탈 정도는 아니거니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별 불평 없이 지하철을 잘 타고 다녔더랬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에서 갑자기 화장실 신호가 왔을 때는 적응의 동물은 개뿔, 그 동안 참아온 온갖 불평을 속으로 파리 지하철에 쏟아놓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꿈속에서 내가 탄 지하철에는 '좋은 소식'처럼 날아든 화장실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꿈속에서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간 게 아니라 무려 파리 지하철에,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지하철이 덩그러니 있어서 생경한 관광지를 보러 가는기분으로 부러 들렸던 것이었다. 꿈 속에서 들어간 화장실 모습이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모습이 아니었어서 실망을 하며 돌아서는 데 볼일을 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라면 화장실에 들어서는 방향으로 줄이 서 있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줄을 서서 나가는 건 뭔 일인가... 화장실 문이 개찰구인가...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쭉 뻗어서 앞을 보니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체온 측정을 하고 있었다. 참... 꿈에서까지 시국이 반영되는걸 보면 코로나를 오래 겪고 있기는 있나 보다. 한사람씩 꼼꼼하게 체온 측정을 하고 지하철을 탈 수 있을지 없을지 판가름하는 통에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꿈속 정황으로만 봐서는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빨리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가야했던 건 확실했다. 그래서인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발을 동동 거리다가(하필 장소가 화장실이라 딱 맞아 떨어지는 표현 아닌가!) 잠에서 깬 날이었다. 이걸 꿈에서나마 '좋은 소식'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날의 꿈이 몇 년을 앞서 본 예지몽이어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마음 편히 예전처럼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어 파리에 갔을 때, 그 때는 부디 파리 지하철에서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기를... 깨알같이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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