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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r 06. 2021

어색한 인사

단상(4)


 가끔씩 모든 승객에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기사님이 모는 버스를 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인사를 받아 주지만, 누군가는 묵묵부답이다. 콩나물 대가리에 귀를 잠식당한 누군가는 인사를 아예 못 듣기도 하고. 정류장마다 한 명씩만 타도 수십개의 정류장에서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의 정성을 못 본 척 할 수 없어 그런 버스를 탈 땐 나도 반갑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되돌려 드린다. 인사에 대꾸하지 않는 게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례를 넘어 서 모욕으로까지 받아들인다는 태국 사람을 많이 응대해 본 경험 탓인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인사를 건넬 때도 머쓱하지만 인사를 받아 주려 노력한다. (도를 아십니까 라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항공사 재직 시절 태국행 항공기엔 절반 가까이 태국 손님이 탔다. 탑승권 확인 듀티를 받을 날, 태국 손님이 더 환대받는 느낌을 받도록 현지 인사를 건넸다. '싸왓디캅'.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합장까지 하면서. 합장 인사를 받은 그들은 하나같이 탑승권을 보여주다말고 손을 곱게 포개어 내 인사를 답을 해줬다.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합장 인사는 종교적인 의미도 담고 있기에 불교가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그들에겐 사소한 인사치레여도 중요한 의식이었다. 누가 합장을 하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외국인이 그저 충만한 서비스 정신으로 합장을 따라해 본 거라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고 본인이 합장 인사를 받았다는 것 자체를 예의의자 종교적 의무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태국 사람의 행동이 기억에 남았는지 버스를 탈 때 혹시나 기사님이 작은 인사라도 한 마디 건네면, 나도 꼭 인사로 화답하려 하게 됐다. 오늘 탄 버스 기사님도 내가 버스에 오를 때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같은 말로 짧은 화답을 했다.


 타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 중 내리는 손님에게까지 '감사합니다' 라거나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같은 따뜻한 배웅 같은 인사를 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내가 타고 나서 집까지 가는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기사님은 일일이 목소리로 승객 배웅에 나섰다. 탈 때와는 달리 하차는 기사님과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해서인지 '안녕하세요'에 비해 대꾸를 해 주는 승객이 점점 적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졌고, 나라도 인사에 화답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차 벨을 눌렀다.


 버스 뒷문이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기사님은 이윽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반사적으로 '안녕히 계세요' 라고 인사했는데 순간, 맥락이 좀 이상해진 기분이었다. 나를 떨군 버스는 유유히 제 갈 길을 갔다. 상대방이 그 자리에, 그 공간에 남아 있는 경우 헤어지는 인사로 안녕히 '계세요'를 하는데, 버스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붕~ 하고 떠나 버렸지 않는가. 그래도 버스 기사님은 계속 본인의 자리에 남아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안녕히 계시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평소에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냥 '감사합니다', 두루뭉술하게 퉁쳤을 텐데... '안녕히'로 시작하는 인사를 들었으니 '안녕히'로 시작하는 인사로 대구를 맞추고 싶었는지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가 불쑥 나온 건데, 밍숭맹숭한 어감때문에 입 주위가 괜히 싱거웠다. 생전 느껴보지 않았던 어색함이 이상하게 여운처럼 남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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