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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r 02. 2021

여자화장실 비밀번호

단상 (3)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은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으니 카페가 딸린 건물 1층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면서 남자 화장실은 열쇠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열쇠 바로 옆에 버젓이 남자화장실용 도어락 비밀번호가 적혀 있어 갸우뚱했더니 도어락은 고장나서 열쇠를 챙겨가란다.


남자 화장실 열쇠를 받아간 나는, 당연히 남자다. 그런데 제목은 여자화장실 비밀번호라니. 더 이상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서둘러 오늘의 단상 '썰'을 풀자면, 화장실을 가고 있는 내게 한 아주머니가 비밀번호를 물은 것이다. 여자화장실 비밀번호를.


카페를 나와 왼쪽에 있는 건물 출입구로 들어와야 화장실로 이어지는데 아주머니는 반대방향인 오른편에서 들어왔다. 그냥 지나가다 볼일이 급해 눈에 보이는 건물 화장실을 쓰려고 들어온 것쯤이라 여겼다. 하필 관대하지 못한 건물에 들어와 도어락으로 빗장이 걸린 화장실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먼저 말하자면 난 장발도 장발장도 아니다(아재 개그 죄송합니다). 머리가 길어 뒷모습으로는 여자로 오해받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숏컷을 한 보이쉬한 여자로 보이는가? 그것도 전혀 아니다. 과장을 하자면 아무리 여장을 해 놓은다 한들 여자로 보이긴 커녕 '여장 남자'로만 보일 수 밖에 없는 얼굴과 외형인지라 아주머니가 날 여자로 오인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니 한치의 오차도 없이 '0'이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볼일이 꽤 급했을 뿐이다. 그러니 남자 화장실 문을 따는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옆으로 보나 남자인 내게 여자화장실의 비밀번호를 물어본 것이다. 모른다는 대답에 '끄응' 옅은 신음을 내거나 발을 동동 굴렀다면 여전히 뿌리뽑히지 않는 몰카범으로 오해받을지언정 아주머니를 구제해 주기 위해 카페로 돌아가 여자 화장실 비밀번호을 몰래 보고 와 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망을 볼 테니 남자 화장실이라도 쓰라고 한다거나. 그런데 아주머니는 그것도 모르냐며 날 타박했다. (얼씨구?)


순간 기분이 묘하게 확 나빠져 보란 듯이 화장실로 들어와 버렸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니 아주머니는 다른 화장실을 찾으러 갔는지 화장실 주위에 없었다. 


여자화장실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타박을 받은 남정네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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