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
며칠 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동생과 '급' 저녁을 먹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만나기로 한 곳은 여섯 정거장 다음이었다. 정거장 수나 거리 상으로나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할 거라며, 꼬르륵 요동치는 뱃속을 애써 모른척했다. 점심 때 갑자기 처리할 일이 생겨 끼니를 대충 때워서인지 평소보다 더 일찍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울려댔고, 그만큼 저녁이 더 고픈 상태였다.
버스는 나를 태운 정류장을 떠나자마자 만난 건널목에서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부릉, 제법 격하게 속도를 올린 버스는 그게 무안해질 만큼 바로 다음 건널목에서 마침 또 바뀌는 빨간불에 속도를 줄이고 멈춰서야 했다. 단추를 한 번 잘못 채우면 그 아래까지 다 엉망이 되는 것처럼 한 번 잘못 만난 신호가 머피의 법칙의 시발점(욕한 거 아님)이 된 양, 삼거리든 사거리든 지나치는 건널목마다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추기 일쑤였다.
도로 신호 시스템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너무나도 평화로워 지루하게 짝이 없는 도로 상황 CCTV를 보는게 심심한 찰나에 꼬르륵 소리를 날 찾아내고는 '옳다구나!' 해코지를 하고 있다 해도 믿을 만큼 모든 신호에 걸려 버스는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궁예의 혼이 21세기에 걸맞게 빙의된 건 아닌지, '누가 꼬르륵 소리를 내어는가'라며 억울함을 호소할 새도 없이 그 나름의 벌을 내리고 있단 생각마저 들었다.
빈 속에 탄 버스가 가다서다를 반복해서였을까. 동생은 일찌감치 도착했다고 톡을 해왔고, 그걸 확인하고 거기에 신호 때문에 가지를 못하고 있다며 답장하느라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서였을까. 불현듯 멀미 기운이 핑 돌며 메스꺼움을 느꼈다. 자리에 앉아 있는 걸 그느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꾸역꾸역 다섯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여섯 정거장 째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를 털어내듯 급하게 내렸다. 그곳에서도 버스는 빠알간 신호에 걸려 멈춰 서 있었다.
오늘 뭔 날이길래 지나는 건널목마다 빨간불이냐고 투덜대는데 웬걸, 버스 정류장이 세워진 중앙 차선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횡단보도는 마침 초록불이었다. 차가 멈추면 사람이 지나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도 멍청하게시리 이게 왠 타이밍이냐면서 금세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총총총,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야말로 일희일비의 끝판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