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Feb 09. 2021

요즘 읽고 있는 책 때문인가

단상 (1)


 요즘 읽고 있는 책.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씨의 19가지 그림자>. 이름만으로도 양해를 구하고 있음을 어필하는 '양해중'씨와 그 주변 인물에게 벌어지는 일을 사회적 화두와 연결지어 엮은 독립출판 소설집. 오늘 뜬금없이 양해를 구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더니... 마음에 담던 책 내용이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건지... 사실 뭐 그저 우연이었겠지만 타이밍이 참 묘하게 적절해서 단상이랍시고 글을 끄적인다.


 꼭대기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데 바로 위층에서 멈춰섰다. 윗집 사람이 탔나보다, 하고 한 층 더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윗집 아주머니가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강아지가 너무 귀엽네요~"라는 말을 입으로는 뱉지 못하고 호기심에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강아지에게 눈으로만 너희는 너무 귀엽다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래층에 새로 사시는 분인가봐요"

 "아, 네..."


 윗집 이웃을 만난 건 처음이니 이사 온 지 1년이 지났지만 막 이사온 사람 대접을 받으며 인사치레를 건넸다. 그러더니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양해를 구한다.


 "애들이 많이 뛰어서... 시끄러우시죠. 죄송해요."


 혹여나 강아지와 눈맞춤을 할 때 눈을 살짝 추켜 뜬 게 귀엽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다다 뛰어다니던 게 네놈들이렷다' 하는 위협으로 보신 건가. 전혀 시끄럽지 않다고, 강아지가 뛰는 소리도 짖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고 고맙기도 하지... 전에 살던 사람은 막 시끄럽다면서 막대기 같은 걸로 천정을 쿵쿵 찧기도 했어요"


 소음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편이긴 한데, 대형견도 아니고 작고 귀여운 말티즈(종을 정확히 모르겠어서 그냥 말티즈라 했음)가 뛰어다녀봤자 얼마나 시끄럽다고 그런 행동을 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다. 1층에 도착해 내리면서 신경쓰지 말고 애들 편하게 있게 하라고 했더니 또 감사 인사를 건네며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가신 아주머니였다.


 볼일을 보고 저녁에 들어오다 헬스장에 들렀다. 설 연휴에 쉰다고 하니 이왕 그렇게 된 거 오늘부터 쉴까 했지만 어젯밤 '처'먹은 불닭볶음면이 지방으로 변해 축적된 것 같아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뗐다. 의욕 없이 어영부영 운동하고 있는데 다부진 한 청년이 슥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혹시 인클라인 기다리시는 거... 아닌가요? 죄송해요, 저 혼자 너무 오래하고 있었죠. 한 세트만 하고 번갈아 하시겠어요?"

 "네? 아... 괜찮... 근데... 인...클라인이 뭐죠?"


 이번엔 갑작스럽게 구해오는 양해 때문에가 아닌, '인클라인'이 뭔지 몰라서 대답을 조금 버벅였다. 내가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는 이유는 근육을 키우기 위함이 아닌 유산소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그래도 해야겠으니 웨이트를 한답시고 께작거릴 뿐. (헬스장 빌런인가) 인클라인이 뭐냐는 내 질문에 오히려 당황하는 눈치였다.


 "오늘 가슴운동하시는 날인가 해서요... 그럼 인클라인 안 쓰시는 거에요?"

 "네, 안 써요.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쓰세요~"


 '프로 불편러'랍시고 남들 인생에 지적질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 다른 사람에게 폐끼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는 사람을 연거푸 만나다니. 이게 다 가방 속에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씨의 19가지 그림자> 책을 품고 있어서인가, 세상에 양심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덕분인가. 일상을 파고든 교훈 같은 걸 느낀 하루였다. 


p.s. 집에 와서 천정을 살폈는데 진짜 거실 식탁 위에 푹 페인 곳이 있었다... 와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