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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29. 2021

웬일로, 카라멜 마키아토

여행에세이,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단' 커피는 예외다. 아메리카노에 시럽 한 번 넣는 것조차 싫어하는 마당이니 그 아래로 달린, 단 맛이 도드라지는 커피 메뉴들 - 카페 모카, 카라멜 마키아토 등등 - 이 내 시선을 끄는 일은 거의 없다. 믹스 커피를 싫어하는 이유도 내가 무슨 뉴요커라도 된 것처럼 뻐기려는 게 아니다. 별다방 로고가 보이는, 적어도 그란데 사이즈는 되는 아메리카노 혹은 때때로 라떼를 한 손에 거머쥐고 시크하게 걸어가는 그런 모습에 믹스 커피가 왠 말이냐면서 거부하는 게 아니라 믹스 커피는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탕, 프림이 빠진 스틱형 인스턴트커피는 잘 마신다.)


 사촌 동생이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카페 모카는 단데도 맛있다면서, 자기는 달달한 게 당길 때면 종종 그 체인점에서 모카를 사 마신다고 했다. 오늘따라 기름진 음식을 과하게 먹어서 그런지 입가심할 달달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디저트 처돌이인 나라지만 방금 삼겹살을 한껏 때려 박아서인지 달달한 먹거리가 아닌 마실 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촌 동생 말이 떠올랐고,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그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있어 쪼르르 달려가 아이스 카페 모카를 주문했다. 음... 커피가 맛이 없다기보단 역시 내 입맛엔 별로였다. 차라리 한 모금 마시면 표정이 순간 일그러질 정도로 단 편이 괜찮았으려나. 입가심하기엔 애매한 정도의 단맛이었다. 단 게 당겼으면 차라리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실 걸, 하고 후회하며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이던 중 웬 카라멜 마키아토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더블린 근교를 하루에 몰아서 여행하다 잠시 숨을 돌리려 들른 블랙록(Blackrock)이란 도시의 한 카페에서 마신 카라멜 마키아토였다.


 어디서 잘못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아일랜드 물가가 싸다고 생각한 내 착각은 더블린에 도착해 교통 카드를 만드는 순간 바로 산산이 조각났다. 파리 교통비보다도 교통비가 비쌀 줄이야. (파리에선 환급이라도 받았지...)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순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패스를 끊어 더블린 여행을 했다. 그러다 그 교통 패스로 근교를 망라하는 'DART'라는 이름의 열차도 탈 수 있다는 걸 알고 본전을 뽑자는 마음으로 더블린 근교 도장 깨기 여행을 계획한 것이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시게 된 시발점이었다. (욕한 거 아님...)


외관의 색감이 참 예뻤던 DART 열차


  아무리 도장 깨기 여행이라지만 기차만 타고 역에 내려 발 도장 쿵 찍고 돌아올 순 없었기에 이틀에 걸쳐 일정을 짰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서울에서 하루는 경기 북부, 하루는 경기 남부의 몇몇 도시를 여행하고 오는 일정이었다.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셨던 건 첫날 네 개의 도시가 포함된 일정. 그러니까 브레이(BRAY)부터 킬리니(KILLINEY), 블랙록과 던 리오리(DUN LAOGHAIRE)까지였다. 서울-경기권역으로 비유했지만 면적으로만 따지면 그보다는 더 좁긴 할 테지만, 이동 시간과 기차 시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다 보니 꽤 빠듯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해당 구간은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브레이로 가는 열차 안에서부터 지겹도록(a.k.a 복에 겹도록) 바다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떠올려봐도 브레이와 킬리니 구경을 하는 동안에 기차를 탈 때 빼고는 따로 앉은 적이 없던 것 같다. 해변가 산책도 말이 산책이지 촘촘한 일정이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했었다. (뭐, 원래 걸음 자체가 빠르긴 하지만...) 뒤이어 도착한 블랙록에서도 바로 카페에 간 게 아니라 그날 열리던 플리 마켓을 한 바퀴 다 구경하고, 점심을 대충 때우고 나서야 사진 속 카페에서 한숨 돌렸으다. 아마 기록이 남아있다면 그때 이미 만 보 이상은 걸었을 터. 당 충전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해외여행 때면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것들을 소소하게나마 하나, 둘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카라멜 마키아토 마시기'는 선택지에 한 번도 있던 적이 없는데 저 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셨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이 이유 말고는 설명한 길이 없다.


 블랙록에서 마신 마키아토는 어땠더라... 카라멜 시럽이 저렇게 빽빽이 채워져 있는데도 먹고 나면 입안에서 질척대는 단맛이 남은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당 충전에 필요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달달함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매한' 단맛인데 지금 마시는 카페 모카는 애매하게 달아서 싫은데, 저 날 마신 마키아토는 애매하게 달아서 마음에 들었던 건 분명 '여행'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BRAY
KILLINEY
BLACKROCK
DUN LAOGH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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