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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30. 2021

야경이 나를 이끌면

여행에세이,헝가리, 부다페스트


 <말을 모으는 여행기> 헝가리 부다페스트 편에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헤어지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적었더랬다. 까만 밤이 되어 온갖 종류의 빛을 반짝반짝 내뿜는 야경이었다기보다는 '황금빛' 위주로 채워진 야경이 부다페스트 야경이라 그런지 다른 어떤 야경보다 더 값지게 기억되는 듯하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홍콩의 야경이,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보지 않은 어느 도시의 야경이 제일 값지게 기억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눈으로 담았던 여행자는 최고라고 꼽지 않더라도 꽤 오래도록 야경을 기억할 거란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내 주장을 자신 있게 내세우는 편이 아닌데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말을 모으는 여행기> 리뷰에 부다페스트를 언급하는 독자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책을 낸 지 얼마 안 돼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 리뷰에는 부다페스트 야경 사진이 들어간 책 페이지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옛 유럽 여행, 그 속의 부다페스트 야경을 추억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암, 한 번 보고 나면 쉬이 잊을 수 없는 야경이지, 이런 감상을 꼭 나만이 향유하는 건 아니라는 걸 리뷰를 통해 느꼈었다. 

 얼마 전, 책을 입고하게 된 인연으로 팔로우하고 있던 한 책방에서 내 책이 담긴 피드가 올라와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피드는 사장님께서 직접 올린 게 아닌, 책방에서 책을 사 간 한 손님이 올린 구매 인증 피드를 옮겨 온 것이었다. 그래도 반가운지라 책방 피드에 남긴 감사의 댓글을 실제 그 독자 분이 보시곤 대댓글을 달아주시며 얼떨결에 '인친'이 되는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그분의 피드에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인상 깊었는지 역시나 부다페스트 야경 사진이 담긴 페이지가 찍힌 한 장의 피드가 올라왔다. 코로나가 끝나면 부다페스트로 슝 날아가고 싶다는 글과 함께. 책 속에는 고작 세 장의 야경 사진이 있는데, 아직 부다페스트를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그 세 장의 사진만을 보고서도 부다페스트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는 생각에 부다페스트 야경을 최고로 꼽는 나의 자신감이 왠지 더 견고해졌다. 나 역시도 부다페스트 야경이 또 미치도록 보고 싶어 졌기에 블로그에 올린 야경 사진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다 깨달은 한 가지. 이 정도의 야경이 나를 이끌면, 그 '내'가 산을 탄다는 것. 자고로 '산은 보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신조를 뼛속까지 지니고 있는 내가 부다페스트에선 야경에 이끌려 산을 탔었다. 도시의 야경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위해 무려 235m를 올랐다. 그 명소의 이름은 비록 겔레르트 '언덕'이라 일컬어지지만 (과장하자면 내겐 히말라야와 다를 바 없는 높이인) 해발 235m인 언덕이니 산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오르면서도 이 정도 높이면 케이블카나 일부 구간이라도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을 만들어 둬도 좋지 않냐며 속으로 온갖 불평을 쏟아냈지만, 정상에 올라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니 '잘 올라왔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럼에도 잘 올라왔다'도 아니고 별다른 수식어 없이 '잘 올라왔다'는 감회만이 남았다. 

 지인이든 누구든 등산을 가자는 제안은 정말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하는 데, 등산이란 이름에 여행이란 타이틀을 입히면 등산에 마음이 동하려나... 아마 부다페스트의 야경 정도의 풍경이 보이는 산을 찾는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내가 이곳을 오를 줄이야...
정상에 도착하니 서서히 해가 지던 겔레르트 언덕, 아니 '산'
삼각대가 없었어서 사진은 이 모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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