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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n 03. 2021

우연이라 하기엔

단상(12)


 살다 보면 신기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운명 같은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자주 찾는 독립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산 날이었습니다. 입고받은 책이 미처 정리되지 못한 채 놓여 있었는데 괜히 그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샘플 책을 후루룩 훑는데 뒤에서 매니저님이 '그 책, 작가님 이번 신간이에요'라고 작게 설명을 덧붙입니다. '신간', 즉 이미 전작이 있다는 이야기. 이상하게 신간보다 예전 작품이 궁금해져 이전 작품을 찾아보았습니다. 아직 독립출판에는 종류가 많지 않은 소설 장르여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추천을 부탁드리니 우선 첫 번째 작품부터 읽길 권해 그 책을 샀습니다.


 전 책을 꽤 아껴 읽는 편인데... 아니 사실 아껴 읽다기보다는 게을리 읽는 편입니다.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후루룩 읽는 게 아니고 마음이 동할 때가 돼야 책을 펼치는 거죠. 그날 산 책도 시간이 꽤 흐르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펼친 그날, 작가님이 제 인스타를 팔로우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책을 산 당일이었다면 책방 매니저님과 작가님이 소통하다 겸사겸사 책이 팔렸다는 소식을 전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떻게 딱 책을 읽기 시작한 날을 알고서 팔로우를 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신기한 우연은 책을 산 책방의 2호점 오픈 날 또 한 번 겹쳤습니다. 아무래도 저도, 그 책의 작가도 책방 단골이니 2호점 오픈 날 축하 겸 책 구매 겸 서점을 들렀는데 우연이라 하기엔 신박한 타이밍, 같은 시간대에 책방에 들른 거였죠. 책방을 딱 한 시간만 열어두는 것도 아니니 서로 어긋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얼굴도 모르는 '인친'을(저나 작가님이나 인스타에 자기 사진을 올리지 않는 편이라) 갑작스럽게 만나면 어색한 분위기가 흐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오히려 덜 어색할 때가 있죠. 그런데 서로의 관심사가 같아서 그런지, 게다가 그 관심사이 우리를 둘러싼 '책방'이란 공간 안에 있다 보니 스스럼없이 유쾌한 수다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 같은 해프닝의 소소한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동네 서점을 들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최근에 오랜만에 책을 입고하러 광화문의 한 책방에 간 적이 있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만들어주셔서 입고를 드린 후 쉬엄쉬엄 책방 구경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책이 나올 때 '오, 이 책 읽어야지' 해 놓고 또 게으른 독서 습관 때문에 잊고 있던 책을 발견해 바로 또 한 권 샀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우연이 겹칩니다. 읽고 있던 다른 책의 작가님이 종로의 한 책방에서 일일 책방지기를 한다는 스토리를 인스타에 올린 것이었죠. 광화문에서 종로이니 거리도 멀지 않으니 팬심이 발동해 저자 사인을 받으러 그 책방에도 들렀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아예 모르는 분이라면 소식만 접하고 말았을 텐데 다행히 북마켓 때 뵀던 적이 있어서 안 가본 책방도 마실 가는 기분으로 책방을 들렀더랬죠.


 동네 서점으로 향하는 오늘, 왠지 모르게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 같은 누군가와의 만남,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같은 책과의 만남이 있지는 않을까 괜히 마음이 생글생글 피어오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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