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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n 01. 2021

금단의 열매

단상 (11)

 

 

정정. 금단의 열매-가 올라간 케이크라고 해야 정확한 제목이 된다. 어쩌면 카페는 커피가 아닌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닌가 싶은 디저트 '처돌이'인 나지만, 희한하게 스벅 케이크는 구색이 무색하리만큼 내 취향엔 맞는 게 별로 없었다. 베이커리 종류는 더더욱. 그러다 '클라우드 치즈케이크'라는 녀석에 길들여진 때가 있었다. 치즈 케이크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케이크 아래에 얇게 깔린 단단한 쿠키 베이스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클라우드 치즈 케이크를 시킬 땐 정작 치즈 케이크 말고 그 아랫부분이 먹고 싶어서였다고 과장이 아니다. 마치 수박바의 빨간 윗부분 말고 아래 초록색 부분을, 더블비안코의 소프트아이스크림 부분 말고 아래 사과맛 샤베트 때문에 수박바와 더블비안코를 먹게 되는 그런 현상이랄까.


 그러다 우연히 친구와 스벅에 들렀을 때 블루베리 쿠키 치즈케이크를 먹게 되었다. 클라우드 치즈 케이크가 쿠키 베이스 부분을 아래에만 갈았다면, 이 녀석, 당돌하게 치즈케이크를 빙 둘러 쿠키 베이스로 '성벽'을 쌓았다. 항상 아랫부분이 너무 적다고 느껴져 아쉬웠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성벽(城壁)이 아니라 성벽(聖壁, 성스러운 벽)처럼 느껴졌다. 치즈 케이크는 쿠키 베이스에 곁들여 야금야금 파먹고 쿠키를 듬뿍 떠서 한입에 넣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 게다가 이름에 버젓이 달려 있음에도 케이크 위를 장식한 블루베리는 쿠키에 밀려 주연도 조연도 엑스트라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블루베리가 올라간 치즈 케이크 부분도 통째로 쿠키 베이스로 되어 있다면 음... 글쎄 금방 질렸을지도 모르겠다. 초록색만 있는 수박바와 사과 샤베트만 있는 더블비안코는 괜찮을 것 같은데 왠지 이것만은 좀 부담스럽다.


 


 6,900원. 가격도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 카페에 들를 때마다 매번 사 먹기에는 말이다. 애초에 스벅을 매일 가지도 않거니와 어쩌다 한 번 가게 됐을 때 영롱한 블루베리, 꾸덕꾸덕하면서 달달한 치즈 케이크... 말고 내 최애 '쿠키'가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나 한 번씩 먹었다.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이 케이크가 맛있다고 이걸 먹자고 했는데 친구는 충격적인 말을 내게 건넸다.


이거 985 칼로리인 건 아니?




 평소에 칼로리를 일일이 따져가면서 식단을 조절하지 않는(한 적도 없는) 나인지라 메뉴판 왼쪽인가 오른쪽 아래 구석에 표기된 985라는 숫자는 흘기듯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른 것도 아닌 케이크 하나에 달리기엔 꽤 큰 수치가 아닌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일 권장 칼로리가 성인 남성 기준 이천몇 칼로리였던 거 같은데... 그럼 어림잡아도 거의 하루 권장량의 절반에 가까운 칼로리를 이 케이크 하나에... 물론 둘이 나눠 먹으니 대충 500칼로리라고 하고...' (이 와중에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합리화하는 나란 인간...)


 물론 그날은 칼로리고 나발이고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었으니 0칼로리지 뭐, 라고 하기엔 충격이 컸는지 이후엔 이 케이크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종종 이 케이크를 나 혼자 다 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차곡차곡 천 칼로리에 달하는 열량을 꼬박꼬박 적립한 셈이었다. 이러니 살이 빠지나... 살이 빠지면 되레 더 이상한 거지... 의도치 않게 칼로리를 알고 나선 이 케이크는 내게 금단의 케이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실로 오랜만에 이 금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금단의 케이크를 시키고야 말았다.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게 괜한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저 선악과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보니 금단의 케이크가 아니라 '금단의 열매'라고 운을 띄운 건, 무려 슈퍼푸드로 그 효용이 입증된 블루베리에겐 좀 미안하다. 분명 유혹을 뿌리칠 한 번의 기회는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직원이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했을 때 없다고 할 수 있었음에도 머뭇머뭇거리다 결국 이제는 메뉴판에 뚜렷하게 보이는 '985'를 못 본 척 한 채 '블루베리 쿠키 치즈 케이크도 하나 같이 주세요'라고 하고야 말았다. 이런들 또 어떠하며 저런들 또 어떠하리. 맛있으니 됐다. (이제 어디 가서 다이어트한단 소리 하질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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