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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l 15. 2021

모기돌림

단상(13) 해충을 박멸하는 조리돌림


 어제저녁, 반찬을 전자레인지로 데우려던 순간 무언가를 보았다. 전자레인지 속 공기 중에 둥실 떠다니는 무언가. 무력하게 떠다니는 형상이라기엔 자력으로 어딘가로 움직이려는 모습이었는데, 전자레인지 문을 닫는 찰나 모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은 닫혔고, 30초 조리 버튼도 이미 눌렸다. 그게 정말 모기였는지 확인하고픈 호기보다도 허기가 한발 앞선 터라 굳이 가동을 멈추고 레인지 속을 살피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진짜 모기라손 치더라도 해충 한 마리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한들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문득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해충 박멸 영상이 떠올랐다. 해충이라고 해봐야 '벌레포비아'인 내가 볼 수 있는 건 모기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크기나 외형 - 쉬운 예로 바선생 -의 벌레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경직되기에 모기를 넘어서는 해충을 가지고 노는 영상은 도무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알고리즘을 타고 뜨는 바선생 섬네일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나는 그때마다 서둘러 스크롤을 내렸다.


 레인지 속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모기를 떠올리는 건 무의미했다. 갖가지 방법에 속수무책으로 박멸되는 영상 속 모기를 아무런 감정의 미동 없이 본 것처럼 30초, 20초, 10초- 땡! 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모기의 운명이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뚜껑을 덮어놓고 돌렸기에 위생적으로도 별걱정이 안 됐고) 다른 동물 학대 소식을 접할 때 느끼는 불쾌감, 혐오감이 전혀 들지 않은 건 모기의 태생이 '해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 귀의한 누군가는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반찬을 빼내고 전자레인지 속을 훑어봤지만 모기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은 없었다. 혹시나 레인지 바닥에 눌러 붙은 건 아닐까, 행주를 가져와 쓱 훔쳤지만 역시 아무 흔적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하긴, 요즘 같은 폭염엔 모기도 활개 치지 못하겠지. 그게 설령 모기였어도 레인지 속에서 불타 사라졌거나, 애초에 모기가 아닌 희미한 먼지였거나.


 참 별것도 아닌 글감을 가지고 구구절절 적어 내려왔는데... 사실 이 글이 쓰고 싶어진 건 '조리돌림'으로 말장난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 (죄송합니다...) 빙빙 돌아가는 전자레인지에서 조리되는 순간이니 '조리돌림'이란 말이 딱 맞지 않는가. 그렇다면 해충을 박멸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기돌림'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분명 이 농지거리를 친구들한테 했다면 나야말로 그들의 싸늘한 시선, 욕설, 가벼운 주먹질 정도로 조리돌림당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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