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Sep 29. 2021

뚜껑을 열자 홍수였다

단상 (21) 이틀 연속 떡볶이를 먹은 이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떡볶이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몇몇 프랜차이즈에서 출시된 로제 떡볶이가 인기를 끄는 탓에 이 대답엔 간혹 꼬리 질문 혹은 제안이 따라붙곤 한다. XX 로제 떡볶이 먹어봤냐거나 OO 로제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식. 근데 희한하게 내 침샘은 로제 떡볶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고로 떡볶이는 빨간 맛 아니겠는가. 레드벨벳이 괜히 빨간 맛을 궁금하다고 한 게 아니다. 


'빠,빠,빨간 맛~ (쿵짝쿵짝) 궁금해 허니~'. 이걸 고집스럽게 '부, 부, 분홍 맛~'이라고 하면 어감도 안 살거니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맛이 돼버린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불닭볶음면에 한창 사랑에 빠져있을 때도 그랬다. 다행스러운 건 내 혀는 불닭볶으면을 받아들이지 못할 맵찔이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맵부심을 부릴 정도는 아니라 핵불닭볶음면은 시도해보진 않았다. 더 매운맛이 생기기도 했으니 덜 매운 맛이 안 나올 리 만무하다. 어느 순간,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이 출시되었다. 늘 불닭볶음면을 먹겠다고 도전했다가 한 젓가락 먹고는 온갖 쌕쌕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내게 접시를 쓱 몰아 주던 친구가 타깃이었다. 친구가 정성껏 끓인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 이번에 접시를 미는 건 내 쪽이었다. 떡볶이 자체만 놓고 보자면 매운 음식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위 사례처럼 매운 맛을 중화시킨답시고 크림을 섞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저께 집에 들어가던 길에 저녁을 차려 먹긴 귀찮고 그렇다고 먹고 가자니 당기는 음식이 없고 해서 집 앞 편의점을 들렀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즉석 떡볶이를 살 요량이었는데, 웬걸 로제 떡볶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뭔가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의 질척이는 질감이 입안에 맴도는 게 싫었지만, 일단 떡볶이란 메뉴에 꽂힌 이상 빨간 맛이든 분홍 맛이든 저녁 메뉴는 떡볶이여야 했다. 결국 한 끼 저녁 식사의 포만감은 떡볶이가 아닌 실망감이 채웠다.


 






 사진을 살짝 보정했더니 '로제'만이 가진 누리끼리한 색감이 덜해 보이긴 하지만 로제 떡볶이다. (그나마 저 아래 사진엔 그 색감이 잘 보인다) 사진에서 또 잘 보이는 건, 바로 국물이 많다는 것. 분명 표시된 선까지 물을 부은 건데... 








뚜껑을 열어보니 홍수였다. 


* "터널을 넘어서자 설국이었다"를 패러디한답시고 인용문처럼 넣어보았다. 


 빠빠빨간 맛이 중화된 탓에 네 맛도 아니고 내 맛도 아닌 애매한 떡볶이가 되어 버렸는데 심지어 물 조절까지 실패해 뜬금없이 국물 떡볶이를 먹어야 했다. 사실 한 끼 정도 대충 때운다고 아쉬워하는 성격이 아니라 배나 채우면 됐지, 하고 넘길 수 있었을 텐데 떡볶이가 내게 이런 모욕감을 준다는 게 괘씸했다. 추석 때 하도 '처'먹어서 당분간은 밥도 좀 적게 먹고, 특히 탄수화물(떡볶이도 떡볶이지만 난 빵 중독자다...)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까맣게 잊었다. 쓰다 보니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애초에 편의점에 들러 떡볶이를 사는 거 자체가 앞뒤가 안 맞다는 걸 깨달은 나란 인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 번은 내 취향에 딱 맞는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며 어제저녁 또 편의점에 들러 이번엔 빠-알간 떡볶이를 샀다.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는 법이다.


 

빠,빠,빨간 맛~(쿵짝쿵짝) 궁금해 허니~


 이틀째 떡볶이는 실망감으로 헛헛하게 채워진 내 속에 매콤한 포만감을 선사했다. 로제 떡볶이와 같은 브랜드였던 터라 전날의 대홍수를 기억하며 이번엔 표시 선보다 물을 더 적게 받아 자작한 떡볶이를 즐길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삶은 달걀까지 야무지게 하나 까서 넣었다. 떡을 다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달걀을 으깨 삭삭 국물에 비벼 숟가락으로 듬뿍 퍼먹는 그 맛을 위해. 근데 물을 너무 적게 넣은 탓에 마지막에 남은 국물이 자작해도 너무 자작했다. (한숨) 이렇게 또 한 번 떡볶이를 다시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야 만다.


하아... (부질없)다이어트...

매거진의 이전글 차돌부스러기박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