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1) 이틀 연속 떡볶이를 먹은 이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떡볶이요.'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몇몇 프랜차이즈에서 출시된 로제 떡볶이가 인기를 끄는 탓에 이 대답엔 간혹 꼬리 질문 혹은 제안이 따라붙곤 한다. XX 로제 떡볶이 먹어봤냐거나 OO 로제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식. 근데 희한하게 내 침샘은 로제 떡볶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고로 떡볶이는 빨간 맛 아니겠는가. 레드벨벳이 괜히 빨간 맛을 궁금하다고 한 게 아니다.
'빠,빠,빨간 맛~ (쿵짝쿵짝) 궁금해 허니~'. 이걸 고집스럽게 '부, 부, 분홍 맛~'이라고 하면 어감도 안 살거니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맛이 돼버린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불닭볶음면에 한창 사랑에 빠져있을 때도 그랬다. 다행스러운 건 내 혀는 불닭볶으면을 받아들이지 못할 맵찔이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맵부심을 부릴 정도는 아니라 핵불닭볶음면은 시도해보진 않았다. 더 매운맛이 생기기도 했으니 덜 매운 맛이 안 나올 리 만무하다. 어느 순간,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이 출시되었다. 늘 불닭볶음면을 먹겠다고 도전했다가 한 젓가락 먹고는 온갖 쌕쌕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내게 접시를 쓱 몰아 주던 친구가 타깃이었다. 친구가 정성껏 끓인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 이번에 접시를 미는 건 내 쪽이었다. 떡볶이 자체만 놓고 보자면 매운 음식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위 사례처럼 매운 맛을 중화시킨답시고 크림을 섞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저께 집에 들어가던 길에 저녁을 차려 먹긴 귀찮고 그렇다고 먹고 가자니 당기는 음식이 없고 해서 집 앞 편의점을 들렀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즉석 떡볶이를 살 요량이었는데, 웬걸 로제 떡볶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뭔가 까르보나라 불닭볶음면의 질척이는 질감이 입안에 맴도는 게 싫었지만, 일단 떡볶이란 메뉴에 꽂힌 이상 빨간 맛이든 분홍 맛이든 저녁 메뉴는 떡볶이여야 했다. 결국 한 끼 저녁 식사의 포만감은 떡볶이가 아닌 실망감이 채웠다.
사진을 살짝 보정했더니 '로제'만이 가진 누리끼리한 색감이 덜해 보이긴 하지만 로제 떡볶이다. (그나마 저 아래 사진엔 그 색감이 잘 보인다) 사진에서 또 잘 보이는 건, 바로 국물이 많다는 것. 분명 표시된 선까지 물을 부은 건데...
뚜껑을 열어보니 홍수였다.
* "터널을 넘어서자 설국이었다"를 패러디한답시고 인용문처럼 넣어보았다.
빠빠빨간 맛이 중화된 탓에 네 맛도 아니고 내 맛도 아닌 애매한 떡볶이가 되어 버렸는데 심지어 물 조절까지 실패해 뜬금없이 국물 떡볶이를 먹어야 했다. 사실 한 끼 정도 대충 때운다고 아쉬워하는 성격이 아니라 배나 채우면 됐지, 하고 넘길 수 있었을 텐데 떡볶이가 내게 이런 모욕감을 준다는 게 괘씸했다. 추석 때 하도 '처'먹어서 당분간은 밥도 좀 적게 먹고, 특히 탄수화물(떡볶이도 떡볶이지만 난 빵 중독자다...)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까맣게 잊었다. 쓰다 보니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애초에 편의점에 들러 떡볶이를 사는 거 자체가 앞뒤가 안 맞다는 걸 깨달은 나란 인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 번은 내 취향에 딱 맞는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며 어제저녁 또 편의점에 들러 이번엔 빠-알간 떡볶이를 샀다.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는 법이다.
이틀째 떡볶이는 실망감으로 헛헛하게 채워진 내 속에 매콤한 포만감을 선사했다. 로제 떡볶이와 같은 브랜드였던 터라 전날의 대홍수를 기억하며 이번엔 표시 선보다 물을 더 적게 받아 자작한 떡볶이를 즐길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삶은 달걀까지 야무지게 하나 까서 넣었다. 떡을 다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달걀을 으깨 삭삭 국물에 비벼 숟가락으로 듬뿍 퍼먹는 그 맛을 위해. 근데 물을 너무 적게 넣은 탓에 마지막에 남은 국물이 자작해도 너무 자작했다. (한숨) 이렇게 또 한 번 떡볶이를 다시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야 만다.
하아... (부질없)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