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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23. 2021

사활을 건 글쓰기

단상(24)


환호가 퍼졌다. 미스터트롯 2차 전국투어 콘서트 '피'켓팅에 성공한 날이었다. 당신도 모바일로 티켓팅 출사표를 던졌으나 티켓 오픈 몇 분, 아니 몇 초 만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내가 티켓 예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안방에서 환호를 지르셨다. 심지어 날짜가 크리스마스였기에 '크리스마스가 뭔데 그걸 챙기고 앉았어'라던, 당신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며 기뻐하셨다.


청천벽력. 코로나는 겨우 구한 콘서트로 향하는 길 앞에 빗장을 걸고야 말았다. 공연 연기 문자가 예약자인 내 명의의 핸드폰으로 세 차례 날아왔고, 그러는 동안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명절을 두 번이나 쇘다.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더 이상의 연기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취소되었습니다'라는 청천벽력의 문자가 날아들고야 만 것이었다.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는 무슨, 긴긴 기다림의 끝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남고도 남을 순간이었다.


연말을 맞이하야 임영웅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어머니께서 전해오셨다. 

"어? 근데 왜 예매해달라고 얘기 안 했어?"

이번엔 예매해서 보는 공연이 아니고 KBS 생중계를 통해 방영된단다. 지난 추석(이었나 설날이었나) 했던 나훈아 콘서트처럼. 대신 '위드 코로나'의 시국인지라 아예 무관중은 아니고, 소수의 관객은 입장 가능한 콘서트란다. 이번엔 피켓팅 대신 방청 신청 게시판에 사연 쓰기 미션이 떨어졌다.


어떠한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나도 S.E.S.에 반쯤 미쳐있었으니 그때 그 덕질 감성을 몽글몽글 피워 올리면 되려나.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어머니가 임영웅을 좋아한다고 구태여 나도 그의 노래를 들어봤다거나 공연 연상을 봤다거나 한 적도 없다. 임영웅 팬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니까. 공감이 되지 않으니 엄마 입장에서 그렇게나 애정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를 건져 내기가 참 힘들었다.


사연을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구상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나의 지령이 더 추가됐다. 뻔한 사연과는 다르게,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임영웅을 무지 좋아하셔서~', '힘든 시기에 임영웅의 목소리를 듣고 위로를 많이 받아서~' 같은 글과는 다른 사연을 쓸 것. 이미 백지인 내 머릿속이 더 하얗게 물드는 순간이었다. 마치 또래의 아이보다 아주 조금 일찍 말을 떼었다고 자기 자식을 영재처럼 여기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고작 여행에세이 한 권을 독립출판으로 냈을 뿐인 내게 이다지도 엄청난 글쓰기 과제를 주셨으니까. 


꾸역꾸역 글을 적기 시작하긴 했는데 임영웅 정도의 인기면 사연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몇백 명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수십만 명이 사연을 신청할지도 모를 인긴데, 과연 담당자들이 그 많은 사연을 이 짧은 기한 안에 다 읽어볼 수 있기는 한 건가, 하고 말이다. 쥐어 짜낸 아이디어가 엄청 신박하지도 않았고, 결국 쓰다 보니 '임영웅을 좋아한다', '임영웅의 노래가 위로가 된다' 따위의 구절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여기에서라도 변명을 늘어놓는다. 


사활을 건 글쓰기의 결과가 과연 방청 당첨으로 이어질지... 나조차도 궁금해진다.


신청에 이어 '방청권에 당첨되었습니다' 알림도 받았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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