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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08. 2021

사람이 이렇게 극단적이어서야

단상(23)


핑계가 좋았다. 이번 여름 호기롭게 서핑을 하러 갔다가 약간(이라고는 하나 남들은 꽤 놀랄 만큼)의 부상을 입고서는 헬스장에 발길을 끊었다. 어차피 '헬린이'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바디 프로필 따위로 뽐내기 위한 몸매를 가꿔본답시고 다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최소한의 체중 유지를 위해 꾸역꾸역 다녔을 뿐. 팔다리 중 뭐 하나 부러진 거도 아니니 운동하는 데 지장이 전혀 없지만 꼭 이럴때만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나였다. 


"땀나거나 해서 상처가 곪으면 그땐 진짜 상처 부위 찢어서 처치하고 꿰매야 할 수도 있어요."


날씨가 워낙 덥고 습한 때라 외출을 삼가거나 외출을 하더라도 가급적 야외 활동을 줄이라는 주의였으리라. 그러나 내겐 운동을 쉴 딱 좋은 핑곗거리였다. 


(그때 그 이야기는 아래 링크로...)


스테이플러를 뽑고 아무는 데까진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백신을 맞고서는 잘 먹어야 된다는 말이 있듯, 상처가 아물려면 잘 먹어야 한다. 그리하여 땀을 안 흘리도록 몸의 움직임은 최소화했던 것과 달리, 씹고 뜯고 맛보는 입의 움직임만은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몸뚱아리를 보곤 경각심을 느껴 헬스장에 다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얼씨구, 코로나 확진자 수가 네 자리로 치솟아 올랐다. '4단계'라는 초유의 방역지침이 헬스장에도 초를 친 터라 어차피 가봤자 마음 편히 운동하긴 글렀다는 생각에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11월이 되었다. (이다지도 빠른 전개라니...) 코로나 유행이 차차 완화되었긴 했지만, 그 사이 마침(?) 등록 기간이 만료되었다. 머릿속에선 매일같이 '재등록해야지'를 되뇌었지만, 실행으로 옮겨지지가 쉽지 않았다. 한번 손을 놓으니 영영 의지마저 놓아버린 꼴이었다. 11월마저 재등록을 건너뛰면 '연말'이라는 또 다른 좋은 핑곗거리에 무너지고 말 테니 더는 미뤄선 안 된다며 드디어(!) 재등록에 성공했다. ('성공'했다고 하니 뭔가 피켓팅에서 좋은 자리를 하나 선점하기라도 한 것 같다...)


오래 쉬었으니 우선은 쉬엄쉬엄 '워밍업'을 하려고 사이클에 올라 탔다. 마침 안장도 내가 타던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설렁설렁 페달을 밟고 있던 내 옆으로 오전에 근무하는 트레이너가 왔고 쓱 한마디 건넸다.


"안장 높이를 좀 올리셔야 될 거 같아요, 회원님"


가장 낮은 것보다 한 단계 정도 올린 높이. 눈대중으로 스치듯 봐서 높이를 착각한 것도, 오랜만에 타서 원래 타던 높이를 까먹은 것도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 그땐 오후 근무 트레이너가 사이클을 타는 내 옆으로 와서 쓱 한마디를 건넸더랬다.


"안장 높이를 좀 낮추셔야 할 거 같아요. 너무 높게 올려서 타면 무릎에 무리가 오거든요."


높이를 조절하려 안장에서 내려오면서 트레이너에게 대답했다. 예전에 오후에 나오는 트레이너가 무릎에 무리가 오니까 낮추라고 해서 이렇게 타고 있었던 거라고. 오전 근무 트레이너는 살가운 톤으로 그 트레이너보다 키가 크지 않냐고 반문했다. 키가 좀 더 큰 건 맞지만, 뭐 그렇다고 어디 가서 큰 키라고 내세울 만한 키도 아니라서 줄임표를 달듯 어물쩍 대답하고 말았다. 


문득 '사람이 이렇게 극단적이어서야...'하고 찰나의 자책을 했다. 안장을 올리든 내리든 적당한 선에서 조절했어야 하는데, 올리라니까 거의 끝까지 올리고, 내리라니까 이번엔 또 거의 끝까지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트레이너도 너무 낮게 타도 무릎에 안 좋은 건 똑같다며 자기 신장에 맞게 적당히 조절하라는 팁을 던지고는 쿨하게 떠났다.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신장에 맞춰서 말이다.


극단적이라기보다 쉽게 휘둘리는 내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나'에게 기준을 두지 않고 여기서 이래라 하면 이렇게, 저기서 저래라 하면 저렇게 하고 마는 모습. 비단 안장 높이에 그치는 게 아니었으리라. 나 스스로 체중을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 실행에 옮겨야 했다. 부상이 있었지만 어차피 평소에도 땀을 흥건히 흘릴 만큼 운동하는 경우는 손에 꼽았다. 코로나 방역수칙이 4단계로 올랐다지만, 헬스장이 문을 걸어 잠근 건 아니었다. 재등록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으니, 다 괜한 걱정이었고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이쯤에서 제목을 바꾸며 글을 끝낼까 한다. 

사람이 이렇게 휘둘려서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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