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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Dec 21. 2021

가슴 아픈 PCR 검사

단상(26)


귀가 달려있으니 날아오는 소리를 원치 않더라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귀를 막으면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지 못해 더 큰 소리로 말할 때가 있다.


위의 두 자명한 사실 덕분에 상상 속에서 가슴 아픈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증상의 발현과는 별개로 접촉 의심만으로도 PCR 검사를 받는 시국인데 검사를 상상 속에서 받을 건 뭐고, 아프면 찔리는 코가 아프지 가슴 아픈 검사는 또 뭐람. 한 끗 차이의 말실수와 제 기능을 해준 고막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이야기다.


버스에서 의도치 않게 이야기를 엿들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접촉 의심자로 분류되어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는 통화였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 지 모른다는 듯 우렁차게 사정을 설명했다. 얼마나 우렁찼는지 정작 귀를 막아야 할 사람은 나였다. 조용히 통화하라고 몸짓으로 넌지시 알려줄 요량으로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려다가 우스운 말실수가 들려와 그만두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P와 C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는 가족의 안위가 걱정될 판이었다.


'확진자랑 동선이 겹쳐서 CPR 검사받으러 갔거든요...'

'근데 요새 CPR 검사받으려는 사람이 많은지 대기줄이 엄청 길데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상대방은 작은 말실수 정도는 귀엽게 들어줄 수 있는 관용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가졌나 보다. 중간에 PCR 검사라고 바로 잡아주지 않은 걸 보면. 길어지는 통화 속에 등장하는 CPR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내 고막을 때렸다. 간단히 코만 쓱 찌르고 끝나는 검사가 말실수 한 번으로 생사를 오가는 급박한 상황의 응급처치인 심폐소생술(CPR)로 변해버렸다.


코로나 감염을 확인하기 위해 CPR을 받는 상상을 했다. 일단 코시국이니 인공호흡은 생략하기로 하자. 실제로 인공호흡보다 중요한 건 흉부 압박이다.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그만큼 강한 흉부 압박이 필요하다. 간혹 CPR 때 갈비뼈 골절 같은 부상이 동반되는 이유이다. 체내에 바이러스가 있는지 알아내려다가 갈비뼈를 작살내 버리는 상상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갈비뼈를 내어주고 음성 판정 확인을 받으면 퍽이나 기쁘겠다는 생각도 들고. 입을 가려주는 마스크를 믿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나오는 족족 흘려보냈다. 


애초에 CPR은 처치술이지 검사가 아니니 CPR 검사라는 말부터가 오류다. 웃어넘기자니 퍼뜩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아닌 또 새로운 감염병을 떠올리지 않고서도 오미크론에 이은 새 변종이 나타났는데, 그 변종에 심장이 멎는 증상이 동반되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생각. 그땐 웃어넘길 수도 없다. 감염 의심자가 쓰러지면 PCR을 한답시고 코를 쑤시기 전에 CPR부터 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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