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7)
밤안개.
해가 떠 있는 동안에도 깔리면 시야를 가리는 게 안개인데, 이미 어둠으로 시야가 제한된 밤에 깔리는 안개니 그 공포스러움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계절이 한겨울로 접어든 후로는 안개가 잘 드리우지 않았는데, 그저께 느닷없이 눈앞에 놓인 무언가를 보고는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의 짙은 밤안개를 만난 공포를 느꼈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은 지대가 다른 건물에 비해 한 층 높은 지대에 세워졌다. 2층이 1층이 되는 건물이다. 프랑스의 지상층 'rez-de-chaussée'라도 있으면 프랑스에 온 기분이라도 날 텐데(이 지상층 때문에 우리나라 건물의 2층이 프랑스 건물에선 1층이다), 지상층은커녕 도서관에 가려면 계단부터 올라야 하니 괜스레 무릎부터 아파온다. 고작 한 층 올라가는 데 웬 엄살이냐 마는, 책 반납만 하러 나선 길이라 이마저도 귀찮다고 하소연을 한 것이다. 반납기를 이용하면 그만이지만, 기계 역시 입구 옆에 설치돼 있어 이러나저러나 귀찮게 계단을 올라야 했다.
뒷동산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자그마한 둔덕이 도서관 뒤로 이어진다. 그 둔덕만 넘어가면 집 앞 횡단보도가 나온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 아스팔트 길을 따라 가도 되지만 둔덕을 옆에 끼고 돌아가는 셈이라 지름길을 타기로 했다. 아예 방치된 동산은 아니고 제 나름 공원이랍시고 꾸며진 장소라 길은 잘 닦여있다. 그래봐야 벤치 몇 개, 녹슨 운동기구 몇 개 듬성듬성 놓여 있는 게 다지만.
추운 날씨 탓에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둔덕을 넘는데 갑자기 내쪽으로 몸을 휙 돌리는 움직임이 시야에 포착됐다. 어둠 속에서 어떤 형상이 눈 앞에서 움직이면 지레 겁부터 나기 마련이다. 서둘러 가로등 불빛을 시선 앞에 흩뜨렸더니 움직이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시바견이었다. (그 크기가 진돗개에 가까웠지만, 날 깜짝 놀래켰으니 시바견이라 우기겠다. 이런 시바...) 주인이 목줄을 잘 붙잡고 있었고, 사나운 녀석도 아니었지만 놀란 건 놀란 거다. 일본 여행 때 부러 시바견 카페를 찾아갈 만큼 가장 좋아하는 견종이 시바견인데도 불구하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아니 시바견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찰나에 들이닥친 공포가 으스스한 밤안개를 떠올리게 했다.
밤(이라) 안 (보여서) (무서운) 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