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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pr 18. 2022

아델과 클래식

단상 (45)

 동네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는 카페가 두 군데가 있다. N잡러 프리랜서다 보니 일하러 나가는 시간이 들쑥날쑥이라 일하러 나갈 때 시간이 애매하게 뜰 때가 있다. 점심 전에만 집에서 나가면 되는데 너무 일찍 일어났다거나 하는 날. 집에서 다른 작업이 손에 안 잡혀서 카페에 가려고 할 때나 일이 아니더라도 그냥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무지하게 당기는 아침에 종종 들르는 카페다.


 한 카페는 아침에 요깃거리로 적당한 베이글, 잉글리시 머핀 등의 메뉴가 있어서 출출할 때 찾고, 다른 한 카페는 아침 대용 메뉴는 없지만 저렴한 가격 대비 커피 맛이 꽤 훌륭한 편이라 커피만 마실 때 찾는 곳이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가다 보니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몇 주 정도 흐른 뒤부터는 늘 같은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침 먹으러 가는 카페는 클래식 음악이, 커피만 마시러 가는 카페는 팝가수 아델의 노래가 늘 흘렀다.


 클래식 음악은 틀어 놓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다 듣는 게 아니다 보니 무슨 방송인지 모르다가 뒤늦게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프로그램인 걸 알게 되었다. 쇼팽 에튀드, 비엔나 음악 모음집,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등 예전부터 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라디오 DJ로 만나게 될 줄이야. 평소에 라디오를 챙겨 듣는 건 아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 먹으러 이 카페에 올 때면 오늘은 어떤 클래식 음악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찾게 되었다. 정작 김정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걸 안 건 코로나로 격리에 들어간 그를 대신해 대타를 뛴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였지만, 아무튼 뭐 반가운 마음이 든 건 똑같았다.


 아델 음악이야 나도 원체 좋아하는 편이라 커피만 마시러 온 카페에서 듣게 되는 아델 음악은 반가웠다. 2집이나 3집에 수록된 노래 중에 대히트를 했던 'rolling in the deep', 'someone like you', 'hello', 'when we were young'이 자주 흘러나왔다. 문득 새 앨범도 나왔는데 왜 예전 노래만 트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따로 묻진 않았다. 열거한 노래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던 터라 듣기는 좋으나 살짝 물리는 기분이었다. 짬을 내서 커피를 마시러 간 곳이라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야 크게 상관하지 않고 커피 맛만 음미하면 될 텐데, 노래가 물리니 왠지 커피 맛도 물릴 것만 같았다. 라디오 방송은 노래는 매일 바뀌니 라디오 프로그램 자체가 질리지 않는 이상 물릴 일도 없을 터. 왠지 앞으로 아침 먹으러 오는 카페를 더 자주 올 것만 같았다.


 하루는 오늘만큼은 새 앨범의 타이틀곡인 'easy on me'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피만 마시러 들르는 카페에 들어서는데, 새 앨범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물론 'easy on me'가 제일 먼저. 용케 주인이 내 바람을 알아차리고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지만 그래도 단골을 잃을 수는 없다면서 선물처럼 원하는 노래를 틀어준다는 요상한 착각을 한 순간이었다. 결국 자주 찾는 두 군데의 카페가 똑같은 노래의 반복 때문에 한 군데로 수렴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카페를 갈지 선택하는 기준은 조금 바뀌었다. 출출하면 아침 먹으러 가는 카페를, 그렇지 않으면 커피만 마시러 가는 카페를 갔는데, 지금은 잠깐이나마 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에 따라 발걸음의 방향이 결정된다. 아델 노래가 듣고 싶은지, 아니면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은지에 따라.


 내일 마침 오전 일정이 없으니 오후 일을 가기 전에 좀 서둘러 나가야지. 아델과 클래식 사이에서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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