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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pr 22. 2022

세트가 뭐죠 먹는 건가요

단상(46)

 세트라 함은 자고로 중식당에 가면 요일별로 다채롭게 만나볼  있는 탕짜, 탕짬(탕수육 + 짜장면 or 짬뽕) 세트라거나, 참깨빵 위에  쇠고기 패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주문해보고 싶은  패스트푸드 점의 런치 세트 아닌가. 먹는 데에 있어 쏠쏠한 가성비를 챙겨주는 거라는 상식 선에서는 세트가 얼마 남았냐는 질문은 어딘가 -하다. 세트가 얼마냐고 묻는  아니고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 말이다.


 물론 중식당이나 패스트푸드 직원끼리 재고 파악을 위해 세트가 지금 얼마나 남았냐고, 그렇게 구성된 세트로 몇 명의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라면 얼마 남았냐는 질문도 가능하겠다. 근데 난 두 군데 중 어느 곳에서도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맥락을 제외한다. 그럼 대뜸 세트가 얼마나 남았냐는 질문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바로 헬스장이다.


 헬스장을 그래도 꾸준히 다니긴 하는데 어디까지나 현상 유지가 목적이다. 체중이 지금 이 지경보다 더 증가하지 않게끔 하는 현상 유지. 거창하게 몸을 만든다는 목표도 그럴 체력도 없다. 세트 운운하는 상황을 검색하면 헬창, 헬린이라고 불리는 운동 중독자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풀어낸 밈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 '몇 세트 남으셨어요' 글자가 프린팅 된 티셔츠도 검색 결과에...) 그러나 헬린이는커녕 헬베이비 축에도 끼지 못할 나와 상관없는 밈이다. 세트를 염두에 둔다는 건 오늘 어떤 운동을 어떤 루틴으로 할지 계획했다는 소리다. 낸 돈이 아까우니, 몸이 더 불면 안 되니 일단 헬스장에 출석 체크 정도나 하는 내게 이런 계획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붐빌 때는 간혹 "몇 세트 남았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오곤 한다. 알차게 짜 둔 운동 계획대로 지금 당장 이 무게의 덤벨을 들지 않으면, 이 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얼굴을 한 채 묻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나야 뭐 짜둔 루틴이 없어 다른 운동을 하면 되기에 바로 양보하는 편이다. 이렇게 바로 양보하면 괜히 자기 때문에 억지로 자리를 내어주는 건 아닌지 미안해하며 대개 머뭇거린다. 잠깐 머쓱해하다가도 내어준 자리를 꿰차며 이어가는 게 보통인데 가끔 "3세트 남았어요" 같은 기대했던 말이 돌아올 때까지 추궁하는 사람도 있다. PT 수업 중인 트레이너도 마찬가지. PT를 빌미로 다른 회원의 운동까진 방해해선 안 되니 자기들이 다른 걸 하고 오면 된다면서 몇 세트 할 예정이냐고 다시 물어온다. 몇 세트 할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다가 아무 세트나 툭 던진다.


 "사... 사 세트... 아님 오... 오 세트요."

 얼떨결에 선포한 꼴이 되어 깔짝 하고 마려던 운동도 끈질기게 네다섯 세트를 다 해야 하는 상황을 맞딱드린다. 문득 나 말고 대다수의 회원이 어떤 운동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낸 돈이 아까우니 일단은 가자는 마음가짐을 버리자. 몇 세트 남았냐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조금씩 세워가며 헬스장에 가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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