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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May 09. 2022

알람이 울리자마자 잘 일어난 날

단상 (47)


5분에 한 번 꼴로 설정해 놓은 알람. 그 알람의 개수는 어쩌면 늦지 않으려는 일말의 노력을 수치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의지와 상관없이 - 알람을 몇 개나 깔아 두었는지와 상관없이 - 잠에서 깨지 못해 늦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음직한 일이다. 그래도 나름 공과 사 구분 없이 어떠한 약속이든 약속시간에 잘 늦지 않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횟수로 따지자면 늦은 적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적이 없는 건 아니니 단호하게 늦지 않는다고 하지는 못 한다. 약속시간에 잘 늦지 않는 '편'이라고 한 이유다. 문제는 어쩌다 한 번 늦을 때 그동안 안 늦으려고 부리지 못한 여유에 한이라도 쌓였다는 듯이 제대로 늦어버린다는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늦으면 뭐하나. 그 콩이 완두콩이 아니라 타조알만 한 콩인데.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5분, 10분 깔짝깔짝 늦은 적은 없었다. 서둘러 가면 서둘러 갔지 촉박하게 수업 시간에 맞춰 가다가 늦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한 번 제대로 늦으면 늦는 시간의 단위가 분에서 시간으로 바뀐다. 한 교시를 통째로 날리는 건 기본, 두 시간을 늦는 적도 있다. 고등학교 때 하루는 2교시가 끝나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그날 개인적인 이유로 3교시까지만 수업을 듣고 하교하는 날이었는데, 한 시간 깔짝 수업을 듣고 나오는 호재를 누리기도 했다. 그날 아침에 출석을 안 불러서 서류상에는 정상 등교로 남은 운도 따라 주었다. 운이 따르려면 동시에 따르나 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은근히 늦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편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안 늦는다고 자부한다면, 그만큼 아침에 잘 일어난다는 소리일 수도 테고, 그럼 알람을 5분에 한 번씩 설정해 놓을 필요도 없다. 근데 꼴랑 알람을 하나만 해 뒀다가 늦어 버리면 기본 한 시간 지각은 따 놓은 당상이니 불필요해 보여도 빡빡하게 알람을 설정해 두어야만 한다. 


다행히 오늘은 가장 이른 알람을 듣고도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늦고야 말았다. 역시 한 시간이나... 첫 알람으로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고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 아니 크나 큰 오산이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고 허무한 이유로 계속 잠을 청하다가 늦어버렸다. 첫 번째 알람을 끈 건...



꿈에서였다. 꿈 타령이라니. 김 새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가? 나도 그랬다. (한숨) 분명 내 손으로 알람을 껐다. 그 자각 때문에 바로 방심한 나머지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 꿈이란 게 참 괘씸한 게, 알람을 끄고 나서 이어진 꿈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에 드는 꿈이었으려나. 그래서 5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알람도 듣지 못하고 푹 자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꿈에서만) 잘 일어난 날. 이런 꿈을 꿀 거면 차라리 악몽을 꾸는 편이 낫다는 생각까지 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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