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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pr 17. 2022

츄러스 앞 찰나의 고민

단상(44)

 단지 입구에 츄러스 트럭이 섰다. 우연히 지나다 먹었던 적은 있는데 꽤 오래전이었다. 갑자기 입이 심심했는지 터벅터벅 츄러스 트럭으로 향했다. 원래 발걸음이 향하던 곳은 헬스장이었다. 천지가 개벽하기라도 하려는지, 이날은 식단 조절에 성공했던 날이었다. 이렇게 (처) 먹으면서 살 빼야 한다고 설치고 다니니 아가리 다이어터란 소리를 듣는 거라는 자기반성을 하며 과감히 아이돌 관리 식단에 버금가는 식단으로 하루를 버텼는데, 거기에 더해 운동까지 해서 지방을 불태우겠다고 헬스장을 가던 찰나였는데, 츄러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보디빌딩 대회를 나가려는 것도 아니니 츄러스 하나쯤이 뭔 대수겠냐마는, 아가리 다이어터가 웬일로 식단도 잘 지키고 운동도 빠지지 않고 나가려는 찰나였으니 괜한 고민이 들었다. 누가 보면 매일 식단이랄까 운동이랄까, 예민하게 건강을 챙기는 줄 알겠지만, 늘 다이어트에 신경이 곤두서 있기는커녕 어쩌다 한 번 신경을 썼다 말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길. 앞서 천지가 개벽한다는 과장을 괜히 섞은 게 아니다. 트럭에 다가갈수록 코 끝을 더 진득하게 간질인 튀겨지는 츄러스 냄새에 '운동 가기 전에 이런 걸 먹고 가도 되는 건가' 싶었던 마음가짐은 '너무 굶고 기력이 딸릴 때 가서 운동하는 건 옳지 않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츄러스 하나를 주문했다. 단돈 1,500원.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는 걸 본 주인이 오백 원짜리 동전이 다 떨어졌다며 초코 디핑 소스가 오백 원이라 곁들이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디핑(dipping) 소스의 어감 때문인지 츄러스 하나는 괜찮은데 초코 소스를 곁들이면 체내에 지방이 너무 딥(deep)하게 배일 거 같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애초에 고기도 기름장이나 쌈장 등에 찍지 않고 온전한 고기 맛을 즐기듯이 츄러스도 초코를 찍지 않은 본연의 맛을 더 선호하는 나였다. 소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다지 끌리지 않다는 뉘앙스를 표정에 담아 주인을 쳐다보았다. 어색한 아이 콘택트에 서둘러 시선을 트럭 앞에 붙은 메뉴판으로 돌렸다. 2개에 3천 원이라는, 한 개 가격을 따져보면 바로 계산이 되는 터라 굳이 써 두지 않아도 됐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며 고민하는 찰나, 소스가 별로면 2개를 사도록 마음을 어서 먹으라는 듯 '아니면 짝수로 사셔도 된다'고 에둘러 말한다. 당기지 않는 초코 소스를 억지로 찍어먹기보다 차라리 츄러스 하나를 더 먹는 쪽을 선택했다. 갓 튀긴 츄러스를 받아 드는 손 끝에 뜨끈함이 두 배가 되어 전달되어서인지 괜스레 더 만족스러웠다. 디핑 소스 피하려다 츄러스 한 개를 더 먹은 격이지만, 튀긴 밀가루 설탕 범벅을 먹는다는 죄책감을 더는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귓가에 그럴 거면 그냥 저녁 한 끼를 제대로 먹으라고 비아냥대는 듯했지만, 그건 그거고(진짜 운동 끝나고 저녁을 차려 먹었다. 아가리 다이어터 자체 인증이다... 휴우...) 이건 이거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혀 끝과 코 끝에 아스라히 퍼진 시나몬 슈가의 맛에 트럭 앞에서의 찰나의 고민 따위는 온데간데 없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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