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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pr 16. 2022

결말이 열리면 나오는

단상 (43)


여기 세 권의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재밌어요! 읽어 보세요!', 대놓고 권하는 글이 아니고 소설이 별로란 이야기를 할 거라 제목은 밝히지 않고 편의상 A, B, C 소설이라 하겠다. A 소설은 작가의 문체가 나랑 퍽 잘 맞는지 전작 세 권을 다 재밌게 읽었던 작가가 쓴 신작이었고, B 소설 역시 딱 한 권의 작품만 읽어봤지만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감싸는 듯한 분위기와 묘사에 사로잡혀 여운이 짙게 남았던 소설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이었다. C 소설만 유일하게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꽤 유명한 작가라서 이름만 어디선가 들어봤던 작가를 처음 접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A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읽지 않았다. 일단 예상했던 내용과 판이하게 달랐다. 나 한 사람을 위해 쓴 소설이 아니니(영화 '미저리'도 아니고) 바라던 내용과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불만스러운 건 아니다. 그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던 세 권의 전작들처럼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나름의 반전으로 잘 버무렸다면 새삼스럽게 몰입하며 읽었을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소설은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마니아층까지 만들어지며 '웰메이드'로 손꼽히는 걸출한 드라마를 보다가 억지 전개와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난무하는 막장 아침 드라마 따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소설을 읽다가 말았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했는지 후루룩 책을 넘겨 훑다 결말만 좀 더 읽어봤는데 결말도 싱거워서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던 게 옳았다.


B 소설은 기어이 끝까지 읽었다. 아직까지 여운이 남은 읽었던 전작처럼 문장 자체가 아름다워서 소설 속 서사와는 관계없이 읽어봄직한 문장들로 가득 찬 작품이었었다. 다만 전작은 이런 베이스 위에 서사가 정확하고 뚜렷하게 흘렀는데, 이번 편은 조금 헐렁하게 올려진 느낌이랄까. 소설은 시가 아니니, 드라마틱한 재미가 좀 줄거리에 있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다 보니 장장 오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을 조금은 지루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음에 남은 여운이 A 소설처럼 헛헛하지 않고(여운이랄 게 없었지만) 몽글한 감성 속에 남은 건 다행이었다.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어 증폭된 기대감이 딱히 없던 C 소설은 시작부터 의외였다. 소재 자체가 꽤 충격적이어서 처음부터 훅 몰입이 됐다. 그렇다고 묘사나 전개가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진 않아서 과몰입 단계까진 가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에서 소설의 재미를 느낀 작품이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기대도 됐다. A와 B 소설에 비해 분량도 짧아서 처음의 몰입감은 순식간에 구성을 따라 '기-승-전'까지 쭉 이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결말에 도달했는데...


응? 열릴 결말이었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한 추상적 개념이 이 소설의 제목인데, 그 제목을 의식했는지 아주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잘 흐르던 이야기가 제목과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려졌다. 그 상태로 결말을 맺어버렸다. 작가 나름의 여운을 남기는 방식일 수도 있고, 좀 황망한 느낌에 다른 리뷰를 좀 찾아보니 그런 열린 결말이 어떤 생각거리를 남겨 주어서 좋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촘촘해서 저런 식으로 열린 결말로 끝내도 억지스럽거나 엉성한 건 아니었는데, 하필 A, B 소설을 읽으며 실망에 실망이 쌓인 내게는 허무하게 짝이 없는 결말이었다. 정수리에서 피시식- 하고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결말이 열리면 나오는 건 김이었다. '얼굴에 김 묻었어요, 잘생김이요!' 따위의 농담이라도 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김으로 끝나는 말 중에 열린 결말의 김새는 맛을 표현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놓고 폭소하게 만들려는 무진장 희극적인 소설이었다면 '웃김'이라고 에둘러 표현할 수라도 있지...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분도 많겠지만 아직 난 결말을 좀 책임감 있게 마무리짓는 소설이 좋다. 김샜다는 말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소설의 열린 결말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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