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Jun 23. 2022

읽을까 말까 쓸까 말까

단상 (52)


즐겨하던 일에 흥미가 훅 떨어지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올초까지만 해도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바로 읽고,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바로 썼다. 한 책을 읽다가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면 일단 사거나 빌려 둔 다음, 읽던 책을 다 읽자마자 그 책들을 집어 들었다. 마치 점심 먹으면서 저녁엔 뭐 먹을지 궁리하는 느낌이랄까.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영감이 떠오르면 블로그나 브런치에 주저리주저리 적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어 본 뒤로는 플랫폼에 아카이빙해 둔 글을 활용해 다른 책도 한 번 만들어볼까 하고 고민하기도 하지만, 초고를 쓸 때부터 다짜고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고 작정하지는 않는다. 쓰는 행위 자체는 큰 고민 없이 했다는 소리다. 


내키면 읽고 쓰는, '읽자 쓰자'의 텐션이 '읽을까 말까 쓸까 말까'로 뚝 떨어진 것을 퍽 실감하는 요즘이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이 책 읽어 볼까, 이런 글을 한 편 써볼까 고민할 때면 예전처럼 '읽자 쓰자'하고 달려드는 텐션이 내 속에서 사라진 걸 느낀다. 재밌어 보이는 책을 봐도 '오늘은 좀 피곤하니 다음에 읽지 뭐...', 잘 표현해낼 수 있을 듯한 재미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막상 쓰려면 떠올린 대로 글이 잘 안 써질 텐데...'라며 머뭇거리기 일쑤다. '얼쑤'하고 달려들어도 모자랄 판에 머뭇거리기 일쑤라니. (이런 황망한 드립을 치려는 텐션은 도통 꺾이지 않는다.)


단순히 즐길 요량을 넘어 선,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주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살짝 벗어난 읽기, 쓰기의 영역에 발을 담고 있기는 하다. 서평단 활동을 하며 쓰는 글은 블로그나 브런치에 냅다 적어 버리는 글보다 품을 더 들여야 한다. 독립출판계에 발을 들인 후에 '작가'라는 멋쩍은 호칭을 자주 듣기는 하지만 호칭은 호칭일 뿐, 프로라고 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 그렇다고 내 졸저를 사가는 사람이 지불한 책 가격만큼의 값어치는 해야 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엔 글을 아무렇게나 쓸 수 없는 노릇이다. 


앞서 열거한 이런 활동이 스트레스나 부담으로 작용하여 책 읽기와 글쓰기에 흥미를 잃은 것 같진 않다. 올초에 서평 도서를 네 권에서 여섯 권으로 늘렸고, 독립출판으로 <욕고불만>이라는 에세이를 한 권 더 출판하기도 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텐션은 '읽자 쓰자'의 정점에 있었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린 서평을 보고 그 책을 샀다는 피드백에 덩실덩실, <욕고불만>을 개시했던 북페어 때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또 덩실덩실 어깨춤까지 출 기세였다. 한 개인의 단순한 취미로 그치는 읽기, 쓰기가 아니라 영역을 조금 더 넓혀가며 내가 읽은 좋은 책을 남에게 소개하고, 부끄러운 수준이어도 내 생각을 글로 펼쳐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활기를 일상에 불어넣었다. 


올해의 상반기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간 잘해 오던 읽고 쓰는 일에 텐션이 뚝 떨어졌다 보니 예전만큼 책과 글에 곧장 달려들지 않고 '읽을까 말까 쓸까 말까' 고민부터 하는 이유가 뭔지 나 스스로도 궁금한 지경이었다. 명쾌한 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브런치를 켰다. 쓰다 보면 뭐가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읽고 쓰기에 앞서 쓸데없는 생각부터 너무 많이 하는 내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콕 짚을 순 없지만, 어떤 책을 읽기도 전에 '이 책은 인스타에 올릴 만한 책이려나'하고 고민한다거나, 글을 쓰려다가도 '이 글은 써 두면 나중에 활용할 만한 건더기가 있으려나'하는 식으로 고민했다. 누가 보면 인플루언서인 줄 알겠다. 서평을 올린다한들 그 책의 판매량에 미세한 변화도 불러일으키기 힘들 테고, 간혹 잭팟이 터질 확률로 어떤 글의 조회수가 폭등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소소한 조회수에 그치는 글을 쓰는 주제에 어딘가 황송한 고민부터 하고 있는 꼴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일이 한 번에 쏟아지면서(일이 제때제때 알아서 나눠 들어오면 좋으련만, 늘 일이 몰아서 들어오는 N잡러의 슬픈 숙명이란...) 취미 생활 따위엔 눈길조차 주기 힘든 시기가 최근에 맞물렸던 점도 '읽을까 말까'의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읽기, 쓰기에 앞서 고민이 너무 많다는 게 더 큰 이유였음은 확실하다. 서평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던 때가, 기획이 더 커질지 않을지 염두에 두지 않고 두세 편의 글부터 일단 써보던 때가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북으로 엮은 <몽파보리>와 <V.V., ㅅ.ㅅ.> 역시 브런치북을 만들려고 애초에 작정했던 글이 아니었다. 글 몇 편이 떠올라서 일단 그 꼭지부터 썼다가 비슷한 주제의 글이 많아지며 브런치북으로 귀결된 경우였다.


이유를 파악했으니 읽기 쓰기를 주저하지 않도록 쓸데없는 고민을 제쳐두자-고 갑작스럽게 결의를 다지기엔 아직 예열이 되지 않았다. 운동 전에 몸을 풀듯 잠깐 멎은 '읽자 쓰자'의 직설적인 욕구도 살살 달래듯 데워야 한다. 지금 마인드라면 무턱대고 책을 펴봤자, 키보드에 손을 얹어 봤자 억지로 읽고 쓰는 정도로 그칠 것이다. 그러니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자. (이렇게 마무리하니까 '읽자 쓰자'가 '읽을까 말까 쓸까 말까'로 격하된 데에 이어 아예 '읽지도 쓰지도 말자'라고 단념하는 느낌이지만... 정말 숨 고르고 원래의 활기로 돌아오기로...)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한 권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