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63)
아무 생각 없이 집 앞 공원을 지나가는데 누군가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시선은 없었다. 뭐지?, 갸우뚱하며 아래를 쳐다보니 두세 걸음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길고양이라면 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치면 화들짝 놀라며 줄행랑을 쳤을 텐데... 아니, 이미 멀리서 걸어오는 내 기척을 보고 도망갔으리라. 근데 이 녀석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집고양이는 아닌 거 같은데... 마음 같아선 '귀여워'를 연발하며 다가가서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애써 마음으로만 귀엽다고 외치며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 더 걷다가 뒤를 돌아봤는데도 여전히 녀석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으로 찰칵- 카메라를 꺼내는 행동을 보고 도망가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
5미터 정도 더 걸었는데 이번엔 오른편에서 아까와 같은 시선의 낌새가 느껴진다.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니 투박하게 만들어진 나무 벤치 아래 다른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아까 그 고양이처럼 꿈쩍 않은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자기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훌륭한 모델이 되어 줄 테니) 자기 사진도 찍고 가라는 것처럼. 이게 웬 횡재냐, 도망가지 않는 길고양이를 두 마리나 마주치고. 신난 마음에 다시 카메라를 켜서 찰칵- 녀석을 사진으로 박제했다.
사진을 찍고 나니 벤치 너머로 길고양이를 위해 마련된 밥그릇과 물그릇이 보였다. 벤치가 있던 곳은 생활체육 시설이었는데, 운동하러 오고 가는 사람들이 공원 주변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듯했다. 아무래도 왔다 갔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만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줄어든 거라고 짐작했다. 사진을 다시 보니 완전히 경계를 푼 모습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느낌의 외모나 눈동자 모양 때문에 괜히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딱 사진에 찍히는 정도까지만 지켜봐 주고 손길을 뻗쳤다면 그대로 도망갔거나 냥냥 펀치를 날렸을 것 같은 눈빛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
사람이 지나가도 가만히 있는 고양이 두 마리 덕분에 길고양이를 품어 주는 사람들의 온정을 실감했다.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이런 데 소소하게 감동하다니, 어지간히 랜선 집사 노릇을 했나 보다. 구독하는 고양이 유튜브 채널에 새 영샹이 올라온 듯하니 글은 이만 줄이고 그걸 보러가자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