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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Aug 31. 2022

차라리 개구리 반찬...

단상 (64)


고기 한 팩을 사서 반절을 먹었다. 나머지 반은 다음 날 먹겠다고 냉장고에 살포시 넣어 두었다. 지난 저녁,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남은 고기 반찬을 곱씹는다. 냠냠, 고기는 언제나 맛있으니까, 하루 뒀다 먹어도 맛있을 테지, 라며. 죽어다 깨어나도 채식주의자는 못 될 나란 인간... 


집에 도착해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하는데 식탁에 가족 중 누군가 먹다 남긴 치킨이 놓여 있다. 호오, 치킨이라니- 잠깐 설렜지만, 오는 내내 울부짖은 고기가 냉장고 속에서 빨리 자신을 꺼내 구워달라고 아우성친다. 바라던 바다, 잔뜩 달군 후라이팬에 고기를 올린다. 치익, 치익, 구워지는 맛깔난 소리 사이사이를 비집고 엉뚱한 생각들이 끼어든다.


치익-, 그러고 보니 치킨도 닭'고기' 잖아.

치익-, 저거 저렇게 놔두면 안 상하려나... 먹어 치워야겠지?

치익-, 고기 다 구워봐야 반 팩밖에 안 되니까 배가 안 찰 텐데...

치익-, 어라? 치킨 포장 박스에 '치킨은 항상 옳다'라고 되어 있네. 암, 그럼 옳고 말고.


고기를 한번씩 뒤집고는 서둘러 전자레인지에 남은 치킨을 데운다. 해물이나 생선 요리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한 끼 식사에 육해공을 다 먹어치울 뻔했다. 김치를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낯익은 불투명 용기가 보인다. 아차, 고기에 정신이 팔려서 이틀 전에 먹다 만 두부김치를 잊고 있었구나! 냉장 보관했으니 상하진 않았겠고, 며칠 더 넣어 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지만 먹어 치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김치를 꺼내나 두부'김치'를 꺼내나, 김치 반찬을 꺼내는 건 매한가지니 몸에 좋은 두부도 곁들이기로- 이럴 때만 온갖 식재료에 몸에 좋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하아...) 


소고기와 치킨과 두부김치.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은 조합의 상차림을 보고 있자니 동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느은~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차리기에도 먹기에도 먹고 나서 치우기에도 차라리 개구리 반찬이 낫다고 할 노릇이다. 일단 가짓수가 하나니까... 눈에 보이는대로 먹어 치워야한다며 메인 반찬만 세 개를 차려 놓고 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개구리 반찬 하나만을 고집하는 동요에서 교훈을 얻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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