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Sep 19. 2022

무'사'추정의 원칙

단상 (65)


 위독. 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다고 에둘러 전달한 표현은 싸늘한 단어로 내 귀에 꽂혔다. 큰 병원 응급실로 옮겨야 될 것 같아 보호자가 와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내가 곧바로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자꾸 떠오르는 위독이라는 단어를 잊으려 애썼다.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말에 부사 하나가 빠진 거라고, '잠시' 상태가 안 좋아진 것뿐이라고,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집중치료실의 문을 두드렸다.


 연락이 나한테까지 와닿아 내가 병원에 도착하는 동안 다행히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비상연락망에 적힌 연락처는 장녀인 어머니의 전화번호였다. 최초로 병원 측에서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동생과 막냇동생한테까지 전화를 돌렸고 누구든 족히 삼십 분은 걸릴 것 같다는 판단에 세대를 아래로 한 차례 더 거쳐 할머니의 손자, 손녀한테까지 연락을 돌렸다. 증상이 호전되어 '위급'한 단계는 아니라는 연락 역시 병원에 거의 도착한 나에게 제일 먼저 오지 않았다.


 방금 보호자에게 연락한 참이었다는 간호사의 말과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고 있는 산소포화도의 수치가 패닉 상태에 빠질 뻔하던 날 안심시켰다. 의료 지식이 없는 내가 의지할 데라고는 일의 자리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소포화도의 수치밖에 없었다.


 딸들과 사위들이 오기 전, 당직 의사가 치료실에 들렀다. 그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기는 이르다면서 내가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그중에는 폐를 포함한 장기의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종국에는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산소포화도 수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호흡이 불안정해졌다가 나아지고 있지만 또다시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폐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할머니의 입에서 마지막 호흡이 내뱉어진다는 건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박동하던 그래프가 일직선이 되고 '삐'하는 소리가 들어야만 한다는 건가.


 그러는 동안 바깥에선 분주하게 간호사들이 전화를 붙잡고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아까 들른 당직 의사는 할머니의 주치의가 아니었단다. 주치의가 폐렴이 의심된다고 해 항생제를 주사할 거라고 했다. 차오른 가래를 빼내려는 석션 한 차례, 불투명하고 하얀 우유 같은 펑퍼짐한 영양제가 링거에 매달리길 한 차례, 항생제 거부 반응이 있는지 가녀린 왼팔에 테스트를 해보는 주사 한 차례. 각각의 단계를 거치는 사이사이 딸들과 사위들과 손녀 하나가 줄줄이 도착했다. 그때마다 지금까지의 보고 들은 내용을 설명해주어야 했다.


 할머니는 항생제에 거부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다만 나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기 이르다'는 의사의 말에 이상하리만치 거부 반응을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무'사'추정의 원칙이 깃든 모양이다. 용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의 골조라면, 사망 선고가 내려지기 전까지 죽지 않았다는, 아니 죽지 않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이 무사(無死) 추정의 원칙의 골조였다. 주치의도 확진이 아닌 '의심'해보는 거라고 했는데, 의사도 아닌 내가 가족들에게 자꾸만 무사 추정의 원칙에 입각하여 아래와 같이 확신에 찬 설명을 했다.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바람에 위급한 상황이라 판단하여 보호자에게 연락을 돌렸으나, 보다시피 지금은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로 돌아왔다고. 당직 의사는 다시 또 안 좋아질 수 있으니 지켜봐야 한다고 했지만, 주치의가 폐렴일 수 있다고 해서 항생제를 주사했다고. 그러니 항생제 맞고 염증이 사그라들면 괜찮아지실 거라고. 할머니가 무사(無事)하길 바라는 마음에 의사도 아닌 주제에 나도 모르게 무사(無死)할 거라고 진단해 버렸나 보다.


 그러다 폐렴 증상이 아니었던 거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멍해지기도 하고, 폐렴이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냐는 소리에 패혈증이 '폐'혈증인지 '패'혈증인지, '폐'혈증이라면 폐렴인 경우에 오히려 더 위험한 거 아닌가, 따위의 맥락을 벗어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삼십 여분이 지나자 병원에선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보라고 했다.


 누구 하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질 리가 없었다. 심각한 상황이라면(임종을 지키야 하는 상황이려나) 곁에 있어도 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병원에서 다인원을 수용하기가 곤란하단다. 코로나의 여파로 일반 면회도 네 명까지만 받아주는 시국이고, 할머니처럼 연로한 분이 많이 계시는 병동이니 이해는 갔다. 그래도 또 안 좋아지시면 어쩌나요, 걱정 어린 하소연이 먹혀든 걸까. 자가 키트로 코로나 음성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 딱 한 명만 삼십 분 정도 할머니 곁에 남아 있으라는 허락을 득했고 막내 이모가 병원에 남기로 했다.


 폭풍 같이 지나간 일요일 저녁이었다. 폭풍은 두 가지 흔적을 남겼다. 우선 내 머릿속에 하나. 무사 추정의 원칙이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남은 생각이 자꾸만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나머지 하나는 밥통 옆, 주걱을 담아 놓는 물컵에 둥둥 떠다니는 밥알이었다. 저녁을 차리다가 어머니한테 전화를 받은 나는 놀란 나머지 밥 한 덩이를 푸다 말고 주걱째 밥통 옆 물컵에 넣어버렸다. 희멀겋게 탁해진 물에 둥둥 떠다니는 밥알이 왠지 둥둥 떠다니는 무사 추정의 원칙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