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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Oct 11. 2022

왜 좋은가, 후쿠오카

단상(71)


일본 여행에 빗장이 순식간에 훅 풀렸다. 무비자 개인 자유 여행이 가능해진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위에서 빈말일지언정 일본 여행이나 다녀와야겠다고들 했다. 여권에 먼지만 쌓인지 오래된 나 역시 만만한 여행지가 일본이라고 당장이라도 떠날 기세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요지부동이지만...) 이번에 일본으로 여행 가면 어딜 가고 싶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늘 한결같이 대답했다.


후쿠오카. 무조건 후쿠오카.



후쿠오카를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이나 다녀왔는데 또 후쿠오카를 간다니 나도 참 주책이다. '무조건'이란 부사까지 달아가면서 말이다. 이전에도 '또' 후쿠오카에 가느냐고 물어오면 그 도시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자주 했다. 이거 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본떠 <후쿠오카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이름으로 에세이를 써야 될 지경이다.


뭐가 있냐는 질문에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많지 않은 곳이 후쿠오카다. 후쿠오카 시내만 놓고 보자면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열 번을 갔다고 떵떵거렸지만 후쿠오카 시(市)는 공항이 있기 때문에 기항지로 들락날락거렸을 뿐, 후쿠오카 현(県)과 더 넓게는 기차 패스를 사용하며 북규슈의 다른 현까지 둘러보는 여행을 했으니 후쿠오카라고 했을 때 흔히들 떠올리는 도시만 열 번 여행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항지의 역할에 충실한 도시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시내에 머물며 여긴 볼거리와 놀거리가 없다고 불평한 적은 없다. 오히려 시내에 머무는 동안 도시의 매력에 빠졌고 반나절이라도 더 시내에 머물려고 했다. 쓸데없이 까다로운 도시 취향에 딱 들어맞는 곳이 후쿠오카였다. 도시형 여행자라서 일단 시골은 안 된다. '도시'여야 하는데, 또 서울이나 도쿄처럼 너무 복작거리는 건 싫다. 쓸데없이 까다로운 내 취향에 잘 맞는 적당한 크기, 적절한 분위기를 지닌 덕분에 후쿠오카에 자꾸 가고 싶어졌나 보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아서'는 화자에겐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지만, 청자나 독자에겐 무책임한 이유다. 예전 여행 글쓰기 수업을 과제로 제출한 '몽펠리에는 제 취향을 저격하는 분위기였어요'를 골자로 한 에세이로 전혀 공감가지 않는데 글쓴이 혼자만 좋다고 우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받았던 뼈 때리는 피드백이 떠올랐다. 곰곰이 떠올려봐야 했다. 남이 봤을 때도 타당해할 만한 이유를. 보다 더 구체적인 이유를.


열 손가락을 다 펴서 셈해야 하는 횟수의 후쿠오카 여행을 거꾸로 거슬러 천천히 되짚어 봤다. 아, 어쩌면 이 이유 때문에 나는 후쿠오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많은 종류의 여행을 후쿠오카에서 해 봤기 때문에



우선 인원수부터 따져본다면, 혼자, 둘이서, 넷이서 심지어 단체로도 다녀와 봤다. 이 인원수 조합 안에는 친구와 떠난 여행과 가족과 떠난 여행이 포함된다. 단체 여행이 포함된다는 뜻은 자유 여행뿐만 아니라 패키지여행으로도 다녀왔다는 뜻이다. 당시 이용한 패키지는 배편을 이용했는데, 비행기와 배, 그러니까 후쿠오카를 다녀올 수 있는 교통편은 다 섭렵한 셈이다.


교통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빼놓을 수 없는 기차 썰도 안 풀고 넘어갈 수가 없다. JR 규슈 패스만 도합 세 번을 사 가서 여행했으니 열 번의 후쿠오카 여행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는 추억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기차를 타고 근교의 자연경관 명소를 섭렵하기도 했고, 쿠마몬과 시바견을 보러 작정하고 찾아 간 '덕질' 콘셉트의 여행도 했다.

규슈 여행의 7할은 기차 여행!
기차 타고 찾아 간 후쿠오카 근교의 '니지노 마쓰바라'



일본 하면 온천을 빼놓을 수 없는데, 가족을 모시고 온천 여행을 다녀왔고 료칸에서 가이세키 요리를 즐기기도 했으니 미식 여행은 덤으로 딸려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혼자서 맛집을 개척해 보겠다며 찾아낸 와인바에서 알코올 치사량을 넘는 양의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난 알쓰라 알코올 치사량이라고 해 봐야 한 잔이다. 저 때 두 잔 마셨...) 무려 덴뿌라와 와인을 페어링해주는 곳이었기에 과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세세히 계획을 짜고 갔던 여행이 있었고, 숙소도 출국편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부랴부랴 예약할 정도로 즉흥적으로 떠난 때도 있었다. 이쯤 되니 '모든' 종류의 여행이라고 부풀리고 싶을 따름이다. 여행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을 거라서 감히 모든 종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스시도 뺴 놓을 수 없지...


그리고 언급한 모든 여행이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니 후쿠오카를 좋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후쿠오카, 왜 좋은가', 스스로 답을 마련해 보며 지난 여행을 추억했으니 이제는 정말 열한 번째 후쿠오카 여행을 갈 때가 된 것만 같다. 이전 여행처럼 온천에 가도 좋고, 맛집이나 포토존이 쟁쟁한 카페를 찾아다녀도 좋고, 기차를 타고 다녀도 좋고 적당한 거리는 걸어 다녀도 좋고. 혼자도 물론 좋지만, 여럿이어도 좋을 테니 누구든 후쿠오카에 가자고 물어 온다면 덥석 그 제안을 물 것만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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