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76)
고기 육(肉) 자를 써서 고깃집을 육집이라 칭한 건 아니다. 이런 육..., 하고 화를 억누르듯 말을 끊었으니 육-시X, 하고 욕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의 육은 숫자 6이다. 6집. 그렇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 내 덕질을 책임진 아이돌 그룹의 6집 앨범에 관한 이야기다. 1세대 걸그룹 양대 산맥 중 넷이 아닌 셋이 이룬 산맥 - 그러니까 핑클 말고 S.E.S. - 가 바로 앨범의 주인공이고.
S.E.S. 팬이라면 S.E.S. 6집이란 말에 갸우뚱할 것이다. 발매한 앨범 수만 따져보면 여섯 개보다야 많다. 그런데 이렇게 깔끔하게 떨어지는 숫자로 '몇 집'이라 칭하는 건 정규앨범뿐. 그녀들의 정규앨범은 1집 'I'm your girl'부터 5집 'U'까지 딱 다섯 개다. 다섯 개로 한정했다는 건 6집이 없다는 뜻이다. 2017년 발매된 앨범이 여섯 번째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의 성격이 강하기에 정규 앨범이라고는 할 수 없다. '꿈을 모아서'로 활동한 앨범은 활동의 성격만 놓고 보자면 정규앨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일본에서 발매했던 노래를 한국어로 리메이크한 앨범이라 4.5집이라는, 어딘가 애매하게 딱 떨어지지 않는 숫자를 달아 놓았다. 이 앨범이 4.5집이 아니고 5집이었으면 자연스레 지금의 5집이 6집이 될 테니 꿈에서 6집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꿈에서라... 이 무슨 갑자기 김 새게 만드는 전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미 오래 전에 활동이 끝난 아이돌 그룹의 존재하지도 않는 여섯 번째 앨범을 현실에서 찾아 헤맸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그것도 S.E.S.의 6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수 없는 내가 말이다.
도대체 어떤 계기로 이런 요상한 꿈을 꾼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요즘 추억팔이랍시고 S.E.S. 노래를 자주 들었던 것도 아니고 멤버들을 매체에서 마주한 것도 꽤 오래 전이다. 그나마 최근이라고 해 봐야 유진이 출연한 <펜트하우스>다. 이 꿈은 사실 악몽에 가까웠다. 해외 직구가 일반적이지 않았고, 일본 음반이 국내 라이선스로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 옛날 옛적에 일본에서 발매된 앨범까지 어찌어찌 사서 수집했던 내가 꿈 속에서 6집을 찾지 못해 지치는 지도 모르고 헤맸으니까. 멤버들이라도 꿈에 나왔으면 악몽 중에 일말의 반가움을 느낄 수라도 있었으려나. 어딘지 짐작조차 안 되는 어둑한 곳과 윤곽이 다 뭉개진 흐리멍덩한 곳 사이를 오가며 6집 어딨냐고, 6집 내놓으라고 오열하기 직전의 모습을 한 채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이 정도의 꿈이라면 재미 삼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해몽으로는 그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라도 봐야 하나, 싶은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