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Nov 01. 2022

말문을 막아 버리는 병 같은 게 생겼으면 좋겠다

단상 (75)


 믿기지 않는 소식에 황망하기 그지없던 주말이 지났다. 그 황망함에 매몰되지 않도록 적나라한 참사 소식을 너무 자주 접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신경정신의학회의 성명까지 나왔을 만큼 참사의 여파는 거대했다. 짙게 남겨진 안타까움을 애써 누그러뜨리며 희생자의 명복을 빌어야 할 판국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분노가 이따금 치밀었다. 


그러게 거길 왜 갔냐?


 피해자의 자업자득이란 식의 댓글 혹은 발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따위 말과 글은 며칠째 이어진 수많은 언론과 매체 보도 사이를 비집고 잘도 툭툭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물며 동네 맛집이라고 입소문 난 식당에 가도 북적북적하거늘,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고는 가 본 적 없는 자의 공감이 결여된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핼러윈이라는 명분, 예년 수치를 웃도는 인파의 수 등 여러 상황을 부여할 필요도 없다. 단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 없는 방구석 외톨이마저도 저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피해자를 탓하는 이런 발언 말고도 훨씬 더 선을 넘는 혐오 발언은 더더욱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 글로 옮겨 적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비단 이번에만 이런 2차 가해성 발언이나 혐오 발언이 있는 건 아닌데 이번만큼은 이런 발언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런 글을 보다 보니 내성이 생기긴커녕 조짐만 보여도 훅 하고 화가 나는 메커니즘 같은 게 생긴 기분이다. 기내에서 일했던 경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것이다. 응급환자가 생겨 기내 서비스를 중단했을 때 '아프면 여행을 가지 말던가'라고 나 들으란 식으로 중얼거리던 승객도 있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오는 발언이라고 하기엔 도무지 그러한 반사신경이 어떻게 형성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성악설 신봉자의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해야 그나마 믿는 척이라도 해줄 수 있을 지경이다. 속보를 접하던 당시 함께 있었던 이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는데,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거나 소식을 접할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니 무의식적으로 툭 하고 튀어나온 말이겠거니, 하고 편들어 줄 수 없는 몰이해와 비공감으로 점철된 발언이리라.


 새로운 전염병이 퍼졌으면 좋겠다. 3년 넘게 우리를 힘겹게 한 코로나도 아직 종식되지 않은 마당에 새 전염병을 바라다니... 물론 내가 상상하는 병의 증상은 병리학적으로 발현될 수 없는 증상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2차 가해나 혐오 발언을 하는 자가 말을 뱉는 즉시 감염이 되고 마는 전염병. 감염 즉시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 신경이 마비되어 키보드로도 혐오성 발언을 적지 못하게 되는 전염병이 퍼졌으면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생각 없이 배설된 말과 글을 보게 된 이들이 느끼는 불쾌함과 분노가 발화자(글로 썼다면 작성자)에게 고스란히 옮겨지게 하는 전염병이라도.



지난 이태원 참사로 운명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