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78)
글쓰기에 한 번 맛을 들인 뒤부터 쓰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브런치에 <페른베 단상>이랍시고 매거진을 발행했던 것도 지치더라도, 귀찮더라도 적지 않으면 잊힐 어떠한 사건이나 생각을 적어 두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계속 글을 쓰려고 애쓰지만 점점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많아서 첫 문장을 쓸 때부터 벌써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여행을 자주 다닐 때 그날그날의 일기를 쓰듯 블로그에 여행기를 쓸 때는 이 정도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다. 물론 지금 그때 쓴 글을 들춰보면 형편없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그 맥락이 파악되지 않는 글, 여행 정보를 나열하긴 했는데 알아보기 힘들 만큼 말마따나 주르륵 나열만 해 둔 글, 심지어 프랑스어 자격시험을 볼 즈음에는 작문 연습 겸 프랑스어로 쓴 글들은 문법이고 철자고 제멋대로 블루스(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다. 프랑스어로 쓴 글을 제쳐 두고 여행기만 놓고 보자면, 내가 여행 전에 블로그 후기를 많이 참고했던 심정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널리 널리 읽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깨알 같은 여행 정보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남는 시간에 최대한 빨리 기록했기 때문에 토고는 무슨, 맞춤법 검사조차 하지 않아서 지금 보면 오류 투성이지만, 당시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 글에서 중요했던 건 여행 정보가 전달되느냐지 맞춤법이 맞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반전되었다. 브런치에 써 둔 글을 모아 모아 <말을 모으는 여행기>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고, <분란서, 불란서> 브런치 북이 좋은 기회로 이어져 '밀리의서재'에서 전자책으로 재탄생되었다. 한 매거진에 실렸던 글 역시 그 토대는 브런치에 써 둔 글이었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독자가 돈을 내고 내 글을 읽는 경우가 생겼으니) 오타 검수, 교정교열, 맞춤법 등에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게 되었다. 편집자를 거친 경우도 있지만 독립출판으로, 그러니까 직접 편집 전선에 뛰어들었을 땐 생전 신경 쓰지도 않던 사소한 맞춤법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다. (물론 그럼에도 출간 후 오타가 있다는 피드백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들기도 했다...뜨끔.)
글을 쓰면서 혀 끝에 살짝 맴도는 감칠맛 같은 성취감을 맛봤다. 고작 그 정도의 얕은 감칠맛 때문에 쓴다는 행위에 점점 부담을 느낀다는 건 일종의 모순이려나. 예전에 블로그에 쓰던 여행기와 달리 지금 브런치에 적는 글은 널리 읽히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쓰는 감각을 유지하고 잊힐 만한 것을 적어 두는 '창고'의 역할로 활용 중일뿐이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브런치 글 조회수가 폭발할 때면 기쁘다기보단 아까처럼 뜨끔-하곤 한다. '엇, 그 글은 맞춤법 검사 제대로 안 했는데...'라면서...)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지금은 책을 낸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잘 팔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애초에 잘 팔리길 바라면서 만든 책인데 실제로 불티 나게 팔린다면 글쓰기에 부담을 느끼더라도 신명 나게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출간에 의의를 둔다며 마음을 비웠는데도 비교할 거리가 생길 때면 의욕이 뚝 끊긴다. (최근 들어 <말을 모으는 여행기>보다 근간인 <욕고불만>의 판매가 부진하다는 걸 몸소 느껴서 하는 소리다) 예전보다 더 부담을 느꼈기에 더 공을 들여 글을 쓰는데 반응은 점점 덜해진다. 이러니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는다. 감칠맛도 일단 짠맛이든 단맛이든 베이스가 되어 주는 맛이 깔려 있어야 입맛을 북돋우어 주는 맛인 것이다.
글 쓰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끼던 때라 얼마 전에 간 박물관 두 곳에서 '기록'을 보존해 둔 전시물이 유독 눈에 띄었었다. 평범한 노트에 누군가가 적어 둔 일기일 뿐인,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물건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 사진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본 독일 파견 간호사의 일기고, 아래 사진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를 기록한 일기였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해서 먼 나라로 떠나야 했던 애달픔과 첫 문장 "광주 시민 여러분"부터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사진으로 남길 만큼 두 일기장에 마음이 갔는지도 모른다. 역사적 차원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인상을 남긴 건 쓰는 당시에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기록이 저마다 그 쓸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국 단 한 분도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 오겠지요?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누가 증언을 할까요?"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는 말을 나는 구태여 하지 않는다.
(김숨 장편소설 <L의 운동화> 中)
일기의 저자 모두 자기가 쓴 것이 다음 세대에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이 어떻게 읽힐지라거나 추후에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 따위를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든, 광주에서 펼쳐진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을 알리고 싶었든,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저' 기록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니 그냥 쓰자. 고작 글 쓰는 것 가지고 부담을 느낀다고 볼멘소리는 하지 말고 그냥 쓰자. 몇 글자, 몇 문장 적는 동안 내가 느낀 부담이라 봐야 본국으로 돈을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파견 간호사나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국을 어떻게든 지면에라도 남겨 알리고자 했던 광주 시민이 느끼던 현실의 부담에 비할 수는 없다.
여기에 소개한 일기장처럼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하는 식으로 거창하게 쓸모를 갈구하려는 건 아니다. 우연히 기록의 쓸모에 대해 깨우치게 된 대상이 박물관에서 본 일기장이었을 뿐. 미국의 작가 대니 샤피로 역시 글쓰기에 대해 '절대로 쉬워지는 법은 없다'고, '원고는 상처 받은 연인처럼 등을 돌린다'고 말했다. 대가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마당이니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게 상식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니', 라는 마음으로 부담감을 생각하지 말고 주저리주저리 적어 두면 기록의 쓸모는 언제든 어딘가에서든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