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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16. 2022

오운하다만

단상 (79) 인스타그램에는 정말 절망이 없구나


(말로만 다이어트한다고 떠드는) 아가리 다이어터의 숙명을 짊어진 채 매일 가는 곳이 있다. 바로 헬스장이다. 억지로 운동하러 가는 스트레스가 살이 찌는 스트레스보다 덜하기 때문에 개근상이라도 받자는 마음으로 헬스장에 가긴 가는데, 아가리 다이어터에겐 운동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우수상을 받자는 마음으로 이 한 몸 불살라 운동하진 않는다. 이런 마음 가짐이라면 이쯤에서 헬스장을 그만 갈 법도 한데 덥석 1년 치나 결제한 돈이 아깝기도 아깝고 병원에서 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떠올라 안 갈 수가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 일시적으로 소화 기능이 훅 떨어졌었다. 하루는 복부 팽만으로 의심되는 증상까지 있어서 병원에 들러 피, 소변 검사까지 했는데 결과는 다 정상이었다. 의사는 일시적인 증상이라 처방해주는 약을 잘 먹고 규칙적이고 올바른 식습관을 지키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 했다. 컨디션이 영 좋지 않으니 이때다 싶어 '운동도 당분간 쉬어야겠죠'라고 물었는데, 듣고 싶었던 답변과 전혀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죠. 몸을 더 움직여야 위장 운동도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죠.


그래도 소화도 잘 안 되고 몸도 축 늘어졌으니 가벼운 산책 정도면 되냐는 말에 그 정도로는 위장에 자극도 안 간다며 격하게 뛰는 운동을 해도 좋다고 했다. 최소한 빨리 걷기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도 굳이 덧붙였다. 소화제 한 번 먹어 본 적 없던 내가 생전 처음으로 소화 능력이 떨어진 걸 느낀 것도 서글픈데, 아픈 몸을 이끌고 쉬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격하게 운동을 하라니... (어쩌면 의사가 일시적 소화불량이라는 진단 뒤에 '엄살'이라는 진단을 속으로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로 헬스장을 더더욱 거르지 않고 가려는 요즘이다. 그 사이 시간이 꽤 흘러 잔여 일수가 네 달밖에 안 남았으니 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과감히 떨치면 운동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했는데, 위장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결국 헬스장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참나...)


더부룩한 속을 이끌고 의사 말대로 꾸역꾸역 유산소 운동을 했다. 식단과 식습관도 신경 쓰며 지냈더니 생각보다 금방 위장 기능은 회복되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속이 편해지니 격한 운동을 병행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부지불식간에 고이 접어 나빌레라, 차차 잊어버렸다. 매일 같이 적어도 30분씩은 하던 유산소도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그 횟수를 점점 줄였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씩 하던 유산소의 굴레를 벗어던지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다 마는구나.' 근력 운동이라 봐야 내키는 대로 깔짝 하고 마는 게 다라서 유산소 운동마저 생략하니 헬스장까지 와서 운동을 하다 말고 집에 가는 꼴이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마음처럼 운동을 하지 않는 이가 전국에 수두룩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나와 같은 이들이 어떤 핑계를 대는지 궁금해 인스타그램에서 '#오운하다만'을 검색했다. 웬걸, 검색 결과 없음이란다. 인스타그램에선 #오운완, #오운쉼, 두 부류로만 운동 루틴이 나뉘었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진 해시태그 '오운완'. 오늘 할 운동을 해내고야 말았다는 뿌듯함을 잘 가꾸어진 몸(혹은 가꿔가는 과정 속에 있는 몸) 사진과 함께 인증한다. 그 반대인 '오운쉼'은 겉으로만 보면 하루쯤은 쉬자는 귀찮음이나 게으름의 방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운쉼을 다는 사진에도 버젓이 잘 가꾸어진 몸이 찍혀 있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쉬는 것도 운동이라는 철칙으로 근력과 체력의 회복을 위한 또 하나의 루틴이었다는 걸 드러내 보일 뿐이다. 어제 운동했는데 오늘도 운동하면 손상된 근육이 복구되지 않을 테니 다음 날의 운동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단계로서의 '쉼'인 것이다. 




뜬금없지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책이 떠올랐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만큼은 참 찰떡 같이 잘 지었다며 감탄했다. '#오운하다만'은 설령 인스타그램 유저 중에 그러한 사람이 수두룩하더라도 피드 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절망이었다. 빡세게 '운완'하거나 다음 번을 위해 '운쉼'하거나, 둘을 번갈아 하는 루틴을 차근차근 해 나가는 과정만이 해시태그를 달 자격이 있는 걸까. 애초에 인스타그램에 책 리뷰밖에 올리지 않아서 '#오운하다만'이란 쌩뚱맞은 태그를 단 피드를 업로드 할 일은 없지만, 만약 피드에서 일상을 이야기했다면 개척자의 마음으로 #오운하다만 태그를 달아 보았을까? 글쎄. 아가리 다이어터를 자처하는 나조차도 운완도 운쉼도 아닌 하다 만다는 의지 박약의 애매한 상태를 굳이 떠벌리려고 하진 않을 듯하다. 인스타그램에는 정말 절망이 없는구나, 어딘가 쓸쓸한 상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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