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rnweh Nov 17. 2022

수능 점심시간

단상 (80)

집에 가는 길 옆 이차선 도로 한 방향에 끝날 줄 모르고 줄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려면 삼십 여 분 더 있어야 하고, 그 시간대여도 동네의 구석진 동네에 이렇게 차가 많을 일은 만무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수능시험 날이지. 차도 끝에는 수능 고사장으로 쓰였을 한 고등학교가 있었다.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올 한 해를, 아니 지금의 교육과정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3년을(그보다 더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면 5~6년까지도) 고생한 아들을, 딸을 데리러 온 차량이었다. 


차가 오는 방향 반대로 걸어가며 차 안에 얼핏 보이는 실루엣을 자꾸만 살폈다. 거의 모든, 아니 '거의'라는 부사는 빼도 좋을 듯한, 차가 선팅이 된 상태라서 안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남의 차량 안을 들여다보는 게 좀 볼썽사납기는 하다마는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은 아이들이, 데리러 나온 부모의 차에 타 드디어 안도를 느꼈을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보고 싶었다. 


그 따뜻하다면 따뜻한 픽업 행렬을 보고 있자니 내 수능 시험 날이 떠올랐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려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잘 생각나진 않는데, 유독 또렷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인생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시험 날 다른 것도 아니고 점심시간이 생각나다니... '네가 먹방 유튜버가 될 상인가' 볼멘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시험 자체를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그 숙연함이 섞인 긴장감은 쉽게 떠올릴 법한 감정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언어와 수리 영역을 헤치고 같은 고사장에 배정된 친구들과 모여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자 비슷한 곳으로 가서 먹은 점심시간이 기억난 건 차 안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안도의 감정을 나 역시 그때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일곱 친구들이 있다. 2학년으로 올라간 첫날, 둘, 셋 씩 각기 다른 반으로 흩어진 일곱 명은 어느 누구도 모이자고 하지 않았음에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가운데에 위치한 교실로 모였다. 그렇게 졸업하는 때까지 3년 내내 밥을 같이 먹었다. 문과와 이과가 갈리고, 선택 과목에 따라 또 고사장이 갈렸지만 운 좋게 일곱 중 나 포함 넷이 같은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치렀다. 그날은 점심시간에 어디서 모이자는 얘기를 했던가? 그것까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틀 전에(바로 전날은 예비 소집일이었으니까) 늘 하던 것처럼 삼삼오오 모여 급식실로 가던 기분으로 넷이 모여 도시락을 먹으러 갔던 기억은 정확히 난다. 처음 온 공간의 낯섦, 불편한 긴장감, 남은 시험에 대한 압박감. 점심시간만큼은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낯선 공간이지만 낯익은 이와 편안한 분위기로 잠시나마 시험은 잊고 밥을 먹었으니까.


어쩌면 시험을 망친 아이는 부모의 차에 타서 울음부터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음이 터졌다는 것조차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수능을 치른 아이들을 보다가 수능 날의 점심시간을 떠올린 건 좀 뜬금없긴 하다. (시험을 떠올릴 만큼 학업에 열성적이었다면 서울대 갔겠지...) 고생했을 아이들이 오랫동안 안도감을 느끼길 바랄 따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운하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