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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Nov 18. 2022

한 작가의 여러 이야기, 여러 작가의 여러 이야기

단상 (81)


독서야 어디까지나 취미니까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되겠지만, 내게는 '이상'이 아닌 '요상'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희한한 고집이 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지 않으려는 고집. 그렇다고 A 작가가 쓴 어느 소설이 어마어마하게 재미있었고 바로 다른 소설도 읽어 보고 싶어졌는데, 이를 악 물고 'A 작가의 다른 소설은 지금만큼은 읽지 않을 거야'라며 발악하지는 않는다. 책뿐만 아니라 어떤 콘텐츠든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마음이 워낙 커서 자연스럽게 저런 선택을 할 뿐이다.


민음사에서 젊은 작가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적으로 내는 소설들은 이런 내 취향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제주도의 한 책방에서 당시 신간이던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산 것이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 전부를 사 모으게 된 계기였다. 그중엔 김지영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처럼 반응이 뜨겁다 못해 영화화까지 이어진 작품도 있다. 대중의 반응과는 별개로 문지혁 작가의 <초급 한국어>, 김기창 작가의 <방콕> 등은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읽어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퇴사하고 프랑스로 떠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즈음,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가 나온 걸 운명 같은 타이밍이라 받아들였던 기억과 각기 다른 일러스트가 표지를 장식하는 패턴이 수집 욕구를 자극해 이제는 책이 나오면 작가가 누구든 어떤 스토리든 일단 사고 보게 되었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육 개월, 다음 시리즈의 출간까지 텀이 있다 보니 시리즈라고는 하나 말마따나 개별 작품을 읽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이 시리즈의 소설들을 이어서 읽으려던 게 아니기도 하지만, 여러 작가의 여러 이야기를(심지어 장르도 여러 가지다) 읽다 보면 흐름이 뚝뚝 끊긴 채로 책을 덮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만큼 여운이 반감되는 것 같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에 박제해 둔 책 리뷰 :)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간혹 가다 이런 독서 패턴이 무너질 때가 있다. 철옹성 같던 독서 패턴을 무너뜨릴 만큼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났을 때다. 박완서 선생님의 <미망>,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바로 그 어마어마한 작품이었다. 음식만 '순삭'시키는 게 아니다. 드라마만 정주행하는 게 아니다. 두 소설은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소설을 '순삭'시키고 정주행하고야 말았다. (물론 <미망>은 총 3권이라 며칠 만에 다 읽은 건 아니다) 이렇게나 몰입하며 읽었으니 그 작가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게 박완서 장편소설 전집과 밀란 쿤데라 전집 읽기에 도전했다.

*각각 세계사 출판사의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 민음사의 <밀란 쿤데라 전집>이다.


결과: 전자는 성공, 후자는 실패. 밀란 쿤데라의 다른 소설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또 앞서 언급한 명작과 달리 감흥이 크게 일지 않았다. 그나마 '키치'라는 키워드가 인상을 콕 남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이마골로그'라는 키워드가 뚜렷한 인상을 남긴 <정체성> 정도만 재미있게 읽었다. 꾸역꾸역 다섯 권 정도 읽어가다가 결국 밀란 쿤데라 전집 읽기 중엔 백기를 들었다.


다행히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나목>, <엄마의 말뚝>, <도시의 흉년> 등 꽤 많은 작품을 '순삭'시켰다. 작년은 가히 '박완서의 해'라고 칭해도 될 만큼 그녀의 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한 작가가 쓴 여러 이야기를 탐닉하는 재미를 맛보며 당시 매년 한 작가의 전집을 읽어보리라는 결심까지 했다. 그 결심이 올해 상반기가 다 가기도 전에 무참히 무너진 이유는 바로 위에 적혀 있다. (물론 밀란 쿤데라는 대단한 작가다. 그저 부족한 내 문해력과 개인의 취향 때문이니 밀란 쿤데라의 팬분들은 오해하지 마시길...)


결국 원래대로 한 작가의 여러 이야기가 아닌 여러 작가의 이야기를 찾는 건 (고작 두 번째였지만) 전집 읽기에 실패한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완서 전집 읽기 챌린지 역시 갈수록 그 몰입도가 떨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자전적 내용을 특히 많이 활용한 작가라 '어, 이 이야기 다른 책에 나왔는데?' 하는 부분이 점점 늘었고 시대상이 겹치면 그런 느낌을 더 크게 받았다. 지루함을 느낄 즈음 읽은 <오만과 몽상>은 기대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돼서 '잠깐만, 이야기가 이렇게 흐른다고? 이건 아니지'라며 불만을 품기까지 했다. (창작이야 전적으로 작가의 권한이긴 하다마는...)


동어 반복 같은 내용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고 실망스러운 소설을 맞닥뜨리긴 했지만, 몰입도가 압도적이었던 작품이 워낙 많았던 덕분에 박완서 전집은 전 권을 읽는 데는 성공했다. 전집 읽기에 성공한 유일한 작가라는 데 의의를 뒀지만, (처참히 중도 포기한 밀란 쿤데라 전집 읽기는 모른 척 하자) 다시금 독서 패턴은 여러 작가의 여러 이야기 쪽으로 회귀했다.



별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후루룩 내려 보다가 민음사 시리즈와 박완서 전집 리뷰가 대조되며 눈에 들어와 독서 패턴에 대한 단상을 써보고자 적어 본 글인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 그러니 글은 여기서 줄이는 걸로.


그나저나 여러분은 어떤 쪽에 더 끌리시나요? 한 작가의 여러 이야기를 계속 읽는 패턴? 여러 작가의 여러 이야기를 다양하게 읽는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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