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82)
'아아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며 커피는 무조건 아아를 고수한다지만, 가끔은 다른 커피가 당길 때가 있다. 얼어 죽어도 '아아'를 먹겠다고 고집부리지만 요즘처럼 갑자기 추워질 때는 나 같은 얼죽아도 오늘만큼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립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해서일까.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졌어도 왠지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피하고 싶었다. 아메리카노는 비단 얼음을 동동 띄워 마셔야 하는 음료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의 취향을 더 밝히자면, 커피만큼은 또 달게 마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한 대학 동기 중 하나는 나와 정반대의 입맛이라 쓴 커피는 싫다며 주문한 커피를 받아올 때 시럽을 대여섯 번씩 펌핑하고 했는데, 지금도 그때 친구의 커피에 섞여 드는 시럽을 생각하면 혀 끝이 달달할 정도다. 아무튼, 시럽이건 설탕이건 커피에 넣는 걸 금기시하기 때문에 따뜻한 음료를 고를 때 메뉴의 선택 폭은 굉장히 좁아진다. 카푸치노나 라테를 빼면 시럽이 들어가니까. 모카에는 초코 시럽, 바닐라 라테에는 바닐라 시럽, 캐러멜 마키아토에는 캐러멜 시럽이 들어가지 않는가!
'뜨아'를 마실 바엔 얼어 죽어도 평소처럼 '아아'를 마시겠다며, 따뜻한 커피에 시럽을 넣는 건 죄악이라며 하나 둘 메뉴를 제하고 나니 남는 건 카페라테뿐이었다. 카푸치노도 잠시 언급됐지만, 거품 위에 시나몬 가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뿌려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어(별 걸 다 싫어한다. 까다로운 나 새끼...) 가장 무난한 선택의 끝은 늘 카페라테였다.
"라떼는 말이야"
꼰대로움의 대명사처럼 각인된 문장이지만, 오늘만큼은 '나 때는'을 구성지게 표현한 라테가 아니라 진짜 커피 라테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제오늘,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고, 위의 일련의 선택 과정을 거쳐 따뜻한 라테를 연달아 마셨다. 그런데...
라떼가 말이야
끝 여운이 왜 이렇게 질척이는 거냔 말이다! 우유가 포함된 음료여서 그런가.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해 우유를 잘못 마셨다간 화장실로 직행해야 하는 유당불내증을 겪는 건 아니다. 우유에 포함된 유지방 같은 게 커피를 마시고 난 뒤에 입 안에 구차하게 남아 있는 느낌이 퍽 싫었다. 뭔가 미끄덩거리는 불쾌한 느낌. 이물감이라고까지 하기엔 너무 과장이려나. 예전에 라테를 마실 때도 이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라떼가 말이야, 뒤끝이 왜 이렇게 질척거리는 거야'. 이렇게 결론 지으니 나 때는 이랬다, 저랬다, 구시렁구시렁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것도 상대방의 귀에는 질척거리게 들릴 테니, 괜히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별 시답잖은 생각도 했다.
양치라도 바로 하면 입 속에 남은 불쾌한 여운을 씻어낼 수 있을 텐데... 이런 날은 꼭 칫솔 치약을 안 들고 나왔다. 집에 가자마자 양치해야지, 다짐하며 아쉬운 대로 화장실에 들렀을 때 물로 입 속을 한 번 헹궜다. 역시 사람은 마시던 걸 마셔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