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83)
위안부, 강제이주. 한 단어 정도로 요약되어 기억되는,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기억 속에 아주 작은 단위로 기억되곤 하는 역사. 자주 보고 듣기 힘들더라도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를 품는 단위가 초라하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 역사 선생님이나 왜곡되는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가가 아니니, 자세한 내막까지 속속들이 다 기억하며 살기도 여간 쉽지가 않다. 역사를 주제로 한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잊혀가는 이러한 역사를 상기시키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은 참 다행스럽다.
최근에 김숨 작가의 소설을 연달아 읽었다. <한 명> 그리고 <떠도는 땅>. 전자는 위안부를, 후자는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를 당했던 고려인의 이야기다. 이미 같은 작가의 위안부 증언집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과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한다는 소설 <L의 운동화>를 읽었던 터라 문학으로 잊혀 가는 역사를 기록해내는 작가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박물관 두 곳에서 위안부와 강제 이주의 흔적을 맞닥뜨리고서는 뒤늦게 <한 명>과 <떠도는 땅>을 읽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기억 깊숙이 묻힌 역사를 꺼내보려는 독서가 되었다는데, 실제 의도는 같은 작가가 다른 역사적 소재를 두고 쓴 책이었을 뿐이다. 그 우연이 만들어낸 공교로운 예상치 못한 의도라고 여겼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한 전시실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당신들께서 그린 그림이 걸려 있고, 실제 증언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역사박물관을 다녀온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들른 인천 월미도의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는 연해주의 강제 이주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위안부'와 '강제이주', 한 단어씩으로만 잠재되어 있던 그때 그 아픈 역사를 잠시나마 조금 더 긴 이야기의 형태로 기억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물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예전에 읽어 봐야지 하고서 금세 잊고 만 김숨 작가의 두 소설이 떠올라 바로 책을 사서 읽었다. 단어가 아닌 하나의 사연쯤으로 구체화된 역사를 소설을 읽으며 가능한 한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명>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단 한 명 남는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설정 자체가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홀로 남은 할머님의 입을 빌려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삼백 개가 넘는 각주가 달려 있다. 각주는 대부분 'OOO 증언'이라고 짤막한 내용만 달려있을 뿐이지만, 하나씩 각주를 지나칠 때마다 독자를 울컥하게 만든다. 픽션이지만 논픽션에 가까운, 그러니까 소설 속에 묘사된 할머님이 겪은 이야기는 실제 증언이 그 토대가 되었다. 설정으로 인해 한 사람의 입을 통해 그려진 이야기지만 위안부 피해를 받은 모든 할머님의 사연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고 소설이 단지 악랄했던(그러나 정작 가해의 역사를 쓴 정부는 사과하길 외면하는) 역사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남아 계신 '한 명'의 할머님은 자신과 같이 끌려 온 소녀부터 위안소를 거쳐간 수많은 소녀들을 떠올리려 애쓴다. 기억하려 애쓴다. 한 명의 화자가 기억해내는 다른 피해자 한 명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독자인 나 역시 또 다른 '한 명'이 되어 간다.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할머님을 기억하는 한 명으로, 감히 그 아픔을 마음속으로나마 보듬어줄 한 명으로. 시간이 더 흘러 피해를 증언할 할머님이 더는 없게 되었을 때도, 그걸 빌미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역사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다음 세대의 한 명, 한 명에게 역사를 알려줄 한 명의 역할을 일임받는다.
<떠도는 땅>의 시작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는 고려인이 탄 기차가 출발하는 '페르바야 레치카'역이다. 이 대목에도 역 이름에 각주가 하나 달려있는데, 그 각주부터가 마음 한 구석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화물 열차가 출발하는 기차역'. 박물관에서 본 영상에서 대상자를 짐짝 실듯 꾸역꾸역 넣어버리는 장면이 묘사된 건 우연도 과장도 아니었다. 기차에 제 발로 탄 게 아니라 '실린' 이들이었다. 화물 열차니까 소비에트 당국은 말마따나 짐짝 취급을 했으리라. 참새를 휘휘 쫓아 버리는 조선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소비에트 경찰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당신은 우릴 왜 쫓아내냐"라고. 강제 이주의 모순을 콕 짚는 반박이 아닐 수가 없다.
어디로 끌려가는지조차 모르는 인물들의 심리를 읽고 있자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아직은>의 한 시구가 떠올랐다.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최성은 옮김
철길은 검은 숲으로 향하고 있다.
칙칙폭폭, 바퀴가 철길을 두드린다.
빈터 하나 없이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서.
일 년이란 기간을 두고 따져 보면, 잊혀 가던 역사를 떠올려 본 횟수라곤 기껏해야 한두 번이 전부다. 이번에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그 횟수마저도 줄어들었을 터. 그러니 어디 가서 역사를 두고 왈가왈부하거나 기억해야 한다고 떵떵거릴 처지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며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나서는 듯한 투로 몇 자 적어 보았다. 단어 하나로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언정('한 단어로도 남아 있지 않는 걸요!'라고 한다면... 좀 서글퍼질 것 같다) 어딘가 부유하고 있을 역사의 '떠도는 땅' 한 평을 기억할 '한 명'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