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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rnweh Jul 06. 2023

우동 국물을 추억하며

단상 (98)


 아마 그저께, 어제. 점심으로 냉모밀을 먹었고, 어쩌면 오늘 점심도 냉모밀을 먹을 듯하다. 한 가지 메뉴에 꽂히면 삼시 세끼를 그 메뉴로 먹기도 하는 특이한 메뉴 편력을 가진 터라 '어제는 그걸 먹었으니 오늘은 이걸 먹어야지'하는 고민 따윈 하지 않는다. 어느새 훅훅 찌는 더위가 몰아쳤고, 더위를 몰아낼 요량으로 냉모밀을 한 젓가락 했다가 올여름은 냉모밀의 세계로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바야흐로 이 년 전, 독립출판 여행에세이 <말을 모으는 여행기>를 쓸 때도 위와 같은 내용을 한 꼭지에서 언급했었다. 그때 꽂혔던 메뉴는 역 앞에서 우동을 판다는 브랜드의 '매콤치킨마요덮밥'이었다. 간판에 버젓이 적혀 있듯 메인 메뉴는 우동이지만 그곳을 갈 때마다 늘 덮밥을 먹었다. 그래도 명색이 우동집이라 그런지 메뉴를 내어주는 직원의 왼손에는 덮밥 그릇이, 오른손에는 우동 국물이 담긴 자그마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 국물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밥상에 국이 없어도 개의치 않아 하는데, 메뉴 이름처럼 '매콤'이 가미되어 있다 보니 중간중간 매운맛을 중화해 주는 데는 쏠쏠한 역할을 해주는 국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역 앞을 지나다 역 앞에서 우동을 판다는 매장을 봤고 마침 출출하던 터라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잊고 살던 '매콤치킨마요덮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게 웬 횡재람, 덮밥+냉모밀 세트가 있는 게 아닌가! 예전에 좋아했던 메뉴와 지금 빠져 있는 메뉴의 콜라보라니, 아쉽지만 세트 말고 단품을 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역전우동


 기다림도 잠시, 주문할 때부터 입맛을 돋운 덮밥과 모밀이 나왔다. 덮밥 그릇과 짝을 이뤄 직원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우동 국물이 냉모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쓱싹쓱싹 야무지게 덮밥을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 그 위를 감싸는 매콤한 소스가 마요네즈와 잘 버무려진 맛은 예전에 몇 날 며칠 먹던 그때 그 맛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오물오물 덮밥을 씹으며 쉬고 있는 젓가락을 부려 빠르게 냉모밀을 섞었다. 곱게 갈린 무, 그릇 오른쪽 가장자리에 살포시 붙어 있는 와사비를 통째로 국물 속으로 빠뜨려 휘휘 저어버렸다. 입 속에 매콤함과 기름진 느낌이 가시기 전에 후루룩 냉모밀 한 젓가락을 이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나쁘지 않은 궁합이었다. 어쩌면 당분간 이 조합으로만 삼시 세끼를 먹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


 는데... 의외의 순간에 이 조합이 별로라는 걸 깨우치고 말았다.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거나 하는 투정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예전에 덮밥에 딸려 나오던 우동 국물이 그리워지고 만 것이다. 이유인즉, 냉모밀 국물은 '국'의 역할이라기보다는 면을 담가 먹는 '소스'의 역할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형태는 걸죽한 소스보다 찰랑거리는 액체 그 자체의 국물에 가까웠지만 성에 차진 않았다. 냉모밀 소스, 아니 국물은 우동 국물처럼 입 속에 질척거리는 기름진 이물감과 매콤한 뒷 맛을 깔끔하게 씻겨 줄 수 없었다. 오히려 미끄덩거리는 느낌 때문에 물과 기름이 섞이는 듯한 오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물론 우동 국물 한 그릇 달라고 하면 해결될 고민이다. 근데 아주 크리티컬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종업원을 귀찮게 안 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덮밥에 '차가운' 모밀에 '뜨거운' 국물의 조합은 방금 전 개운치 못했던 오묘함을 없애긴커녕 더 안 좋은 쪽으로 밀어 붙일 것만 같아 국물을 따로 요청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 더운 시기에 냉모밀을 포기하고 싶진 않고... 쓰다 보니 느끼는 거지만 참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고민하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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